새해 아침,
일출 시간을 맞춰 카메라에 삼각대까지 들고 나왔지만
잔뜩 가린 구름에 실망하고 들어와 멀뚱거리다보니
은근히 짜증도 나고 해서 무조건 나가리라 마음먹고
카메라와 가방 하나 들고 용감하게 외출-
아차!
내가 사는 월림은 2시간마다 버스가 다니는데 10여분 차이로
자주 가던 한림행 버스를 놓치고 망연자실.....
반대 고산쪽으로 가는 버스는 언제일까싶어 건너가 보니
아싸!
20여분만 기다리면 오는 걸로 되어있다.
여기서는 교통카드를 이용해도 어디까지 가는지를 먼저 밝혀야한다.
고산-
승용차로 가면 15분 정도면 되는데 마을마다 돌아가는 버스는
30분이 넘어서야 고산성당앞에 나를 내려준다.
막상 오기는 했지만 갑자기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는 당황이 스친다.
고산리는 육거리로 갈래길이 여섯개나 되고 각 갈랫길마다
버스 정류장이 하나씩 있어 헷갈린다.
6~7년전 도보로 제주 해안을 일주할 때 스쳐간 곳으로
차귀도 바로 옆이지만 생소한 곳이다.
생소한 곳을 낯선 버스 기사에게 운전을 맡길 것인지
익숙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편한 것인지를 망설이다가
언제부터 내가 그리 안전하고 편한 것만 따졌나싶은 오기가 불쑥 생긴다.
O.K!
가는거야!
10여분 기다리니 서귀포행 버스가 앞을 가로막는다.
월림에서 고산까지는 차비가 1천원-
고산에서 서귀포로 간다니까 차비 2,500원을 내라고 검표기에 표시가 뜬다.
"환승입니다."
이~쁜 아가씨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1,500원이 찍힌다.
아싸~!!
고산에서 서귀포까지는 지방도로를 따라 새해임에도 길가에는 차도없고
버스에 함께 탄 승객도 4~6명이 전부다.
대정, 모슬포, 안덕....순서도 헷갈리는 지명을 지나면서
해안을 따라 산방산과 사계를 넘어갈 때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래 조금씩 예전에 걸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고....
그렇게 1시간 10여분여를 달리니 월드컵 운동장이 보인다.
예전 서귀포 시외버스 터미날을 이리 옮겼다.
월드컵 경기장, 이마트, 그리고 시외버스 터미날.
주전부리할 것이 있나 둘러볼 겸 이마트에 들렸는데
차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닌데 바리바리 살 수도 없다는
생각에 일단 시외버스 터미날로 철수.
여기서 또 망설임이 시작된다.
도로 고산으로 돌아가면 시간상 일몰 사진이라도 건진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시외버스 터미날은 "동회선"과 "서회선"이 있다.
"동회선" 서귀포에서 화순, 표선, 성산, 세화 등을 지나 동쪽으로 가고
"서회선"은 서쪽으로 돌아 내가 사는 월림으로 간다.
"서회선"을 타면 1/3 거리, "동회선"을 타면 2/3 거리를 가야한다.
서귀포-제주시-한림-월림.....
제주시까지 거의 3시간, 제주시에서 한림까지 1시간 30분에서 거의 2시간, 총 5시간남짓...
서귀포-한림-월림이라면 1시간30분에서 끽해야 2시간.
오후 3시부터 약 30분을 망설이다가 다음으로 미루면 또 2시간을 더 써야한다.
어차피 쉽게 나온 길이 아니니 눈 딱감고 제주시행 동회선 버스를 탔다.
5시쯤 되어 남원과 성산쪽을 지나는데 아! 한라산으로 지는 노을이 곱다.
반대편 버스를 탔어야하는데..하는 후회가 들지만 어쩌랴?
5시가 30분쯤 더 지나니 어둑해진다.
...깜빡 졸았나보다.
버스가 머뭇거리는 느낌에 번쩍 눈을 뜨니 제주시의 정체 상황이다.
역시 여기도 시는 시구나....느끼면서 버스는 서행을 했지만 6시10분쯤
제주 시외버스 터미날에 멈춘다.
"월림으로 직접 가는 버스가 있나요?"
터미날 안내창구 겸 매표소 안에 대고 물으니 6시50분 차가 있단다.
요즘은 대부분이 교통카드로 운임을 계산해서 매표소 직원이 할 일이 없다.
터미날 안에는 젊은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개중에는 육지에서 온 아이들도 있고 대부분은 외곽에 사는 아이들로
시내에 나왔다가 집으로 가는 아이들인듯싶다.
"월림가지요?"
12번으로 마지막에 위치한 탑승장에 들어온 버스에 올라타는 기사에게 묻는다.
"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조금 있다 오세요."
기사아저씨는 담배를 물고있는 내게 급할 거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교통카드를 찍으니 아래로 8,500원이 찍힌다.
월림 -고산 1,000원, 고산-서귀포 1,500원, 서귀포-제주시 3,000원,
그리고 제주시-월림 3,000원.... 맞다.
"제주시에서 월림가는 건 오전에 2번, 오후에 지금 이 버스가 답니다."
제주시에서 월림으로 직접 가는 버스 회수를 물어보니 기사가 친절하게 답한다.
대충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어?
이 아저씨 운전석을 벗어난다?
급한 용무라도 볼건가?
떠날 시간 다 됐는데... 슬그머니 불평을 목구멍까지 넘어오는데
이 아저씨 운전석을 나와 승객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한다.
"가시는 목적지까지 안전 운행하겠습니다."
...음... 좀 충격이다.
생긴건 그렇게 안 생겼는데......
제주시를 벗어나니 띄엄띄엄 가로등이 있는 시골길이라 어둡다.
하이빔을 키고 달리다 앞에 차의 불빛이 보이면 바로 불빛을 낮춘다.
그뿐이랴?
틀어주는 음악이 마음에 들어 혹시하고 가져갔던 mp3를 끄고 들으며 갔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즐겁게 왔어요."
아주머니 한명이 내리면서 기사에게 덕담을 건넨다.
펑퍼짐한 아줌씨가 술냄새를 풍기면서 옆자리에 앉아
전화를 하던 소음과 불쾌함도 싹 잊었다.
"아! 월림에 내리신다고 하셨지요?"
기사는 슬쩍 언질을 주는 내게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고 월림수퍼앞에 세워준다.
정거장에서 집까지 걸어들어오는 10여분이 내내 가볍다.
중간 중간 버스에서 내려 머뭇대는 시간을 빼고도 6시간이 넘는 버스 여행이 즐거웠다.
버스의 코스가 몇년전 내가 걸었던 길들과 대부분 겹치면서
추억을 되새기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 월림리민 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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