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총각은 급한 발걸음으로 수원부로 갔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다믐과 같았다.
'어명! 수원부사는 이 사람에게 당장 쌀 삼백 가마를 하사하고, 좋은 터를 정해서
묘를 쓸 수 있도록 급히 조치하라."
수원부는 갑자기 발칵 뒤집혔다. 허름한 시골 총각에게 유명한 지관이 동행하질
않나, 창고의 쌀이 쏟아져 바리바리 실리지를 않나.
'아! 상감마마, 그 분이 상감마마였다니~!' 총각은 하늘이 노래졌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냇가에서 자기 어머니 시신을 지키고 서 있을
임금님을 생각하니, 황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한편 숙종은 총각이 수원부로 떠난 뒤, 괘씸한 갈 처사라는 자를 단단히 혼을
내 주려고 총각이 가르쳐 준대로 가파른 산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단단히 벼르고 올라간 산마루에 있는 찌그러져가는 갈 처사의 단칸 초막은
그야말로 볼품이 없었다.
"이리 오너라!"
"................."
"이리 오너라!"
"................."
한 참 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게 뉘시오?"
방문을 열며 시쿤둥하게 손님을 맞는 주인은 영락없는 꼬질꼬질한 촌 노인의
행색이다. 콧구멍만한 초라한 방이라 들어갈 자리도 없다.
숙종은 그대로 문밖에서 묻는다.
"나는 한양사는 선비인데 그대가 갈 처사 맞소?"
"그렇소만 무슨 연유로 예까지 나를 찾소?"
"오늘 아침 저 아래 상을 당한 총각더러 냇가에 묘를 쓰라했소?"
"그렇소"
"듣자하니 당신이 자리를 좀 본다는데, 물이 펑펑 솟아나는 냇가에 묘를 쓰라
니 당키나 한 일이오? 골탕을 먹이는 것도 유분수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요?"
숙종의 참았던 감정이 어느 새 격해져 목소리가 커졌다. 갈씨 또한 촌노
이지만 낯선 손님이 찾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비란 양반이 개코도 모르면서 참견이야. 당신이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명당
터인 줄 알기나 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통에 숙종은 기가 막혔다. (속으로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
이라고, 어디 잠시 두고 보자하고 감정을 억누르며...)
"저기가 어떻게 명당이란 말이요?"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이 양반아, 저기는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삼백
가마를 받고, 명당으로 들어가는 땅이야,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발복을
받는 자리인데,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때? 개코도 모르면 잠자
코나 있으시오!"
숙종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갈 처사의 말대로 시체가 들어
가기 전에 총각은 쌀 3백가마를 받았으며, 명당으로 옮겨 장사를 지낼 상황
이 아닌가! 숙종은 갈 처사의 대갈일성에 얼마나 놀랬는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공손해 졌다.
"영감이 그렇게 잘 알면, 저 아래 고래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살지않고,
왜 이런 산마루 오두막에서 산단 말이오?"
"이 양반이 아무 것도 모르면 가만이나 있을 것이지 귀찮게 떠들기만 하네"
"아니, 무슨 말씀인지?"
숙종은 이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저 아래 것들은 남을 속이고 도둑질이나 해 가지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
가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도 여기는 바로 임금이 찾아 올 자리여.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나랏님이 찾아 올 명당이란 말일세!"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이런 신통한 사람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 꿈속을 헤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왕이 언제 찾아 옵니까?"
"거, 꽤나 귀찮게 물어 오시네, 잠시 기다려 보오, 내가 재 작년에 이 집을
지을 때에 날 받아놓은 것이 있는데, 가만... 어디에 있더라?"
하고 방 귀퉁이에 있는 보자기를 풀어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먼지를 털
면서 들여다 보더니... 그만 대경실색을 한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 나가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시간이었다. 임금을 알아본 것이다.
"여보게... 갈 처사, 괜찮소이다. 대신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 묻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소?"
"대왕님의 덕이 높으신데 제가 신하로서 자리 잡아 드리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어느 분의 하명이신데 거역하겠사옵니가?"
그리하여 갈 처사가 잡아준 숙종의 왕릉이 지금 서울의 서북쪽 서오릉
에 자리한 '영릉'이다.
그 후 숙종대왕은 갈 처사에게 3천 냥을 하사하였으나, 노자로 30냥만
받아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이야기가 지금껏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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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하도다 갈 처사여,
냇가에 묘를 쓰고
산마루 언덕에 초막을 지으니,
음택 명당이 냇가에 있고,
양택 명당은 산마루 언덕에도 있구나.
임금을 호통 치면서도 죄가 되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