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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행조종사 故 김완희대위를 추모하며...

11월 15일 엇그제 블랙이글스 훈련도중 비행기 사고로 조종사 한명이 순직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흘러가는 기사 일수도 있지만 공군사관학교에 적을둔 아들을 가진 나로서는 정말 비통하고 가슴아픈 남의 일이 아닌 내 가족의 사건으로 받아 들여진다.

더우기 이번 사고는 비행조종사로써 최고의 꿈인 블랙이글스의 일원중 한명이고 아들학교 선배의 사고라
그 충격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가슴이 미어져만 오고 있다.

대부분의 비행사고로 인한 조종사의 순직은 충분히 탈출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있음에도 민가에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다가 산화하는 참군인들이라 더욱 더 가슴아프고 뼈가 시린다.

이런 사건이 터질때마다 과연 나는 내아들을 공군사관학교에 보낸 것이 진짜 잘한 일일까 되새겨보곤 한다.

오늘 아침 외출나온 아들의 눈치를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는데 돌아오는 그 꿋꿋한 답변은 나의 생각을 부끄럽게 만들고 비록 자식이지만 아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아래기사는 순직한 조종사에 관한 기사의 일부이다.

 

어니스트뉴스=차호재기자] 故 김완희 대위는 공군사관학교 51기로, 2003년 공군 소위로 임관해 2년여간의 비행훈련과정을 거쳐 2005년 일선 전투조종사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고등비행훈련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거둬 작전사령관상을 받기도 했다.

10전투비행단에서 F-5를 주기종으로 약 6년여간 전투비행대대와 작전주요보직을 오가며 에이스가 되기 위한 기량을 착실하게 쌓아갔으며, 후배조종사를 직접 교육할 수 있는 교관 자격까지 취득했다. 비행시간 1,057시간에 달하는 베테랑 조종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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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완희 대위의 생전 모습                   [사진제공=대한민국 공군]


F-5 조종사로서 역량을 갖춰갈 무렵, 故 김 대위에게는 가슴속에 품었던 또 하나의 꿈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공사 생도시절부터 모형항공기반에서 활동할 정도로 고난도 비행을 동경해 왔으며,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에어쇼에는 빠지지 않고 관람할 정도로 블랙이글의 일원이 되고 싶어 했었다.

2010년 첫 번째로 블랙이글에 도전했지만, 기수 안배 문제로 한 차례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블랙이글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이었다. 다음해인 2011년 재차 지원했고 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만장일치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아냈다.

이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 2011년 9월 블랙이글의 정식 멤버가 되었지만, 실제로 에어쇼 공연을 펼칠 수 있는 특수비행 자격을 얻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년 동안 총 43회에 걸친 특수비행 훈련을 받아야 했고, 2012년 9월 마침내 자격을 얻었다. 

故 김 대위가 블랙이글에서 맡고 있던 역할은 3번기(라이트 윙)로 섬세하고 세밀한 조작뿐만 아니라 팀워크가 중요시 되는 위치였다. 1번기를 중심으로 4대의 비행기가 좁은 간격을 유지한 채 특수비행을 펼치기 때문에 가운데 위치하게 되는 3번기는 양쪽의 호흡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조율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故 김 대위는 2012년 9월 자격획득 이후부터 안타까운 사고로 순직할 때까지 오산 Airpower day, 국군의 날 행사 등 총 9회의 공연에 참가해 1년간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또한 故 김 대위는 대한민국과 공군 그리고 블랙이글의 일원임을 너무 자랑스러워 했던 애국청년이기도 했다. 블랙이글이 지난 7월 영국 국제에어쇼에 참가했을 당시, 故 김 대위는 특수비행자격이 없어 에어쇼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이륙을 위해 이동할 때 후방석에서 태극기를 펼쳐 해외 관객들에게 대한민국을 알리는 임무를 담당했다. 단순한 임무였지만 본인에게 역할이 주어졌다는 것 자체에 너무 기뻐하며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영국 현지에서 조립된 T-50B를 에어쇼 현장인 RIAT로 이동시킬 때는 영국상공을 편대 비행하는 블랙이글의 촬영기 조종을 맡아 아름답고 역사적인 사진이 촬영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한 영어에도 능통해 에어쇼 사전협조 뿐만 아니라 영국 특수비행팀인 레드애로우즈와의 교류행사지원을 맡아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영국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9월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대대내에서는 총무역할을 담당할 정도로 선후배간의 신망이 높았으며,  정의감이 넘치고, 원칙을 중시하는 모범적인 군인이었다. 본인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비행기 사진으로 도배할 정도로 하늘을 사랑했던 천직 조종사이기도 했다. 후배 장교의 진급일을 직접 챙길 정도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해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한편, 故 김 대위는 10전투비행단 근무 당시이던 2011년 결혼했으며, 4살 연하의 아내와 8개월 된 젖먹이 딸을 남겨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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