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글에 이어 일부를 올려봅니다.
조금은 딱딱하지만, 관심 가져준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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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재판 가능성]
Momanne : 중재재판(arbitration)에 부탁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는가?
홍 : 일본정부가 공식 제의해 온 적이 없으므로 한국 측도 그동안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실은 “일본이 제의해 올 가능성이 없으므로 검토할 필요도 없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Mormanne : 그렇게 단정하는 근거는?
홍 : 30년쯤 전에 한국의 李漢基 교수가 ‘한국의 영토’라는 논문을 통해 학자 자격으로 “독도문제를 중재재판에 회부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으나, 일본 측에서는 정부든 학자든 이에 대해 일체 반응이 없었다. ‘응하지 못하는’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李漢基 교수는 독도문제에 관해 한국의 대표적 국제법 학자로서 정부에 자문을 해 왔으며, ‘한국의 영토’는 독도에 관한 한국 측의 대표적인 논문의 하나로서 일본의 학자나 정부에 의해 철저히 검토되었을 것이다. 단언하건데, 일본 측이 몰라서 대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Mormanne : 李漢基 교수의 논문은 나도 보았다. 한글을 해독하지 못해 漢字로 된 부분만 읽느라 내용을 숙지할 수는 없었다. 상황이 바뀌어 나중에라도 일본정부가 중재재판을 하자고 제의해 오면?
홍 : 검토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 개인적인 시각이다. 다만 “식민주의에 입각한 영토편입 조치는 법적으로 무효”라는데 대해 먼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 부분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한?일 양국이 독도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Mormanne : 조그만 섬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兩國간에 독도문제가 돌출되면 일본의 언론은 비교적 냉정을 유지하는데 한국의 언론과 국민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홍 : 일본의 언론이나 국민이 냉정할 수 있었던 것은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자기네 정부의 주장이 무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네들이 말하는 소위 ‘북방 도서’와 관련하여 유사한 상황이 벌어져도 일본의 언론이나 국민이 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오히려 러시아 국민이 냉정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 때 “러시아 국민은 mature 한데 일본국민은 왜 이렇게 nervous 하냐”고 물어 볼 것인가? 일본이 3개 영토 문제 중 독도 문제에 한해서만 재판(ICJ)에 가자고 요구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당초부터 일본의 영토가 아니니까 패소해도 잃을 것은 없고 어쩌다가 이기면 순이익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한국을 식민 지배했으니 자료입증 측면에서도 월등 유리한 입장이고…
그러나 소위 ‘북방영토’나 ‘尖閣列島(Senkaku Islands)’ 문제에서는 패소하면 낭패라고 생각하여 감히 재판의 위험 부담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독도문제에 관한 한, 일본으로서는 일종의 ‘부담 없는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이 스스로 주장하듯이 진정으로 ‘분쟁의 평화적 해결’ 정신을 존중한다면 먼저 ‘북방 영토’ 문제나 ‘Senkaku 열도’ 문제를 ICJ에 가져가는 것을 보고 싶다. 일본이야말로 ICJ에 가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이유도 없는데…
Mormanne : 일본은 그렇다고 치고, 그래도 한국의 언론이나 국민이 그렇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제3자로서 이해하기 어렵다. 솔직히 “자신이 없으니까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외부의 시각이 있는데…
홍 : 독도문제를 단순한 영토분쟁으로 인식하면 그런 의아심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 하나의 조그마한 무인도의 영유권 문제이니까… 실제로 일본국민 입장에서는 조그만 무인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비교적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고… 그러나 한국국민에게는 독도가 ‘주권과 독립의 상징’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20세기 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 때 제1단계로 1905년에 독도를 빼앗고, 그 5년 후에 제2단계로 나머지 全국토를 빼앗아 식민지화를 완성하였다.
일본이 “다께시마(竹島)는 일본영토” 云云하는 것이 한국국민에게는 “너희는 아직 완전히 독립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우리의 식민지이다. 제2단계에서 식민지로 된 땅이 해방된 것은 인정하지만 이에 앞서 식민지가 된 독도를 언제 해방시켜 주었느냐. 아직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모욕을 받고 냉정해질 수 있겠는가? 독일이 지금 와서 프랑스더러 “빠리가 나찌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된 것은 인정해 주겠지만, 알자스?로렌은 돌려받아야 하겠어. 빠리가 점령되기 전에 이미 독일이 점령한 것이잖아!” 한다면 프랑스 국민이 점잖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재판으로 해결하는 게 좋겠어!” 라고 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대일(對日) 평화조약에서의 한국영토]
Mormanne : 태평양전쟁 후 1951년에 체결된 대일평화조약에서는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한국의 영토에 포함되는 것으로 명시하면서 ‘독도’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홍 : 조약의 당사국이 아닌 한국더러 설명하라는 것은 이상하다. ‘조약의 해석’ 문제라면, 한국영토의 외곽에 있는 ‘주요 섬’이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한국영토의 외측 한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뜻으로 하는 질문이라면 간단히 반박할 수 있다. 이들 중 어느 섬도 한국영토의 가장 외곽에 위치하는 것은 없다. 제주도를 예로 들면 더 남쪽에 마라도가 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한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 영토의 외측 한계’가 아니라 ‘한국 영토의 외측 한계’를 결정했을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우습다. 패전국은 일본이 아닌가? 대일평화조약에서는 한국영토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부분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일본의 독도편입 주장의 부당성]
Mormanne : 한국은 일본의 ‘1905년 영토편입조치’가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독도가 1905년 이전에 이미 한국의 영토라는 근거는 충분한가?
홍 : 한 가지 물어보자. 일본의 주장대로 독도가 1905년까지는 無主地(terra nullius)였을 가능성이 정말 있다고 보는가?
Mormanne :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홍 : 참으로 식민주의적인 발상이다. 20세기에 와서 태평양의 외떨어진 곳에서 ‘새로 발견된 땅(terra incognito)’이라면 몰라도 한?일 두 隣近國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이미 數 世紀 前부터 한?일 양국 국민이 그 섬의 존재를 잘 알면서 그 부근에서 어업을 해 왔다면 두 나라 중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는 것이 상식 아닐까? 1905년에 정말 無主地(terra nullius)였다면 ‘영국’이든 ‘러시아’든, 아니면 ‘쿠바’든 ‘이디오피아’든 아무 나라나 먼저 독도를 자기 영토로 편입할 수 있었다는 논리인데… 타당한가? 만약에 이러한 나라가 20세기에 독도를 ‘無主地(terra nullius)’라고 선언하면서 ‘영토편입’ 조치를 했으면 과연 일본이 이를 인정하였을까?
Mormanne : 인정하기 어려웠겠다.
홍 : 두 나라 입장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일본의 입장은 “1905년에 독도는 ‘임자없는 땅(terra nullius)’이었으므로 어느 나라든 先占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한국의 입장은 “1905년에 이미 인근국가인 한?일 양국 가운데 한 나라가 영유권을 확보하였을 것이므로, 양국 중에서 과연 어느 나라의 영토였는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입장은 서구의 식민주의 개념에 따른 것이고, 한국은 식민주의를 거부하는 입장이다.
독도의 지리적 위치와 규모를 감안할 때, 독도에 관한 기록이 한국이나 일본의 영토에 속하는 다른 유사한 섬에 대한 기록의 수준에 이르면 일단 독도는 terra nullius 는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의 경우 영토에 속한 섬은 별도의 이름을 가진 것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른다. 그런데 독도는 조그마한 무인도로서 그 자체의 경제적 가치는 거의 없는데도 영유권을 입증할 역사적 기록은 다른 유사한 섬에 비해 비교적 풍부하다. 이것만으로도 terra nullius 의 논리는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 1905년을 기준하여 일본이 한국보다 더 강하게 영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있는지를 한?일 양국의 자료를 종합 검토하여 판정하면 되는 것이다.
Mormanne : 1905년 일본의 영토편입 조치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홍 : 아니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인데 “전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식민주의에 입각한 영토편입 조치에 대해 ‘법적 효과’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독도를 ‘無主地’라고 선언하여 “그 때까지는 자기네 영토가 아니었던” 점을 명백히 한 것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므로 없었던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Mormanne : “일본에게 유리한 것은 인정할 수 없고 한국에게 유리한 것만 인정해야 한다”는 뜻인가?
홍 : 이상한 질문이다. 간단한 비유를 들겠다. 협박이나 사기로 남의 집을 뺏은 경우에 법적으로 소유권 취득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 당초부터 범죄행위도 없었던 것으로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범죄행위의 동기도 있을 것이고... 요컨데, “불법행위에 대해 법적 효과를 부여하지 않아야 하지만, 불법행위 자체나 그 동기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Mormanne : 결국 한국의 입장은 “독도는 1905년에 이미 일본이나 한국 중에서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아야 하는데, 일본은 terra nullius 라고 하여 자기네 영토가 아니라고 인정했으니까, ‘반사적으로’ 한국영토라야 한다”는 것인가? 1905년에 이미 한국영토였음을 한국이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독도가 1905년에 한국영토였다는 증거]
홍 : 물론 한국영토였다는 증거는 충분히 있다. 다만, 한국이 수락하는 입증책임의 정도는 식민주의의 피해를 받은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자기영토에 대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지, 선진국들이 식민주의를 합리화하기에 유리한 ‘엄격한’ 입증책임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 둔다.
우선 1905년에 한국 정부가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는지의 법적 인식(animus)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명쾌한 증거가 있다. 1905년에 일본이 비밀스럽게 영토편입 조치를 한 후에도 한국정부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같은 해에 한국 정부의 외교권을 탈취한 후 다음 해인 1906년에 일본관리 일행을 울릉도에 파견하여 군수에게 “독도는 이제 일본영토가 되었기에 독도를 둘러보러 왔다”고 통보하였다. 이에 울릉군수는 깜짝 놀라 중앙정부에게 “本 鬱陵郡 所屬인” 獨島에 대해 일본인 관리일행이 통보해 온 내용을 보고하고 내용을 조사토록 건의하였다.
“이제부터는 일본 영토”라는 일본 관리의 통보와 “본 울릉군 소속인 독도”라는 한국 관리의 보고가 당시의 양국 정부의 영유의식을 너무나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걸작이다. “보고서의 원본이 없으므로 믿을 수 없다”라고 한다. 울릉군수의 보고서는 같은 해의 신문이나 다른 문서에서 인용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엄격하게 원본 여부만을 가지고 따지면 日本歷史인들 남아날까? 더구나 1910-1945년 간 한국을 식민지배하면서 역사 기록의 管理權도 몽땅 손아귀에 쥐고 있던 일본이 한국에 대해 역사 기록의 원본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니 가관 아닌가?
1906년에 한국의 어느 역사가는 “독도는 전에 울릉도 소속이었는데 일본이 이를 빼앗아 갔다”고 기록을 남겼고, 이보다 몇 년 앞서 1900년에는 정부가 취한 조치로서 “독도를 울릉군수의 관할로 한다”는 내용이 공포된 기록이 있다. 더 이상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Mormanne : 1900년의 정부조치에 대해 일본정부는 뭐라고 하나?
홍 : “거론된 섬은 독도가 아니라 다른 어느 섬”이라는 것이다. 기록에서 ‘獨島’라고 하지 않고 ‘石島’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기록에 ‘독도’란 이름은 앞서 언급한 1906년 울릉군수의 보고서에 처음 나타나는데 이에 앞서 1900년에 ‘독도’라는 명칭이 어떻게 등장하나?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를 rock island 라는 의미인 ‘독섬’(즉, 돌섬)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당시의 관례에 따라 한자로 표기할 때 ‘의미’를 따르면 ‘석도’가 되고 ‘발음’을 따르면 ‘독도’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표기법은 일본에서는 아직도 통용된다.
더우기 현실적으로 ‘독도’말고는 ‘석도’에 해당하는 섬이 없다. 일본이 ‘석도’는 ‘독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도대체 어느 섬을 가리키는지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 아닌가? 일본은 한국의 역사 기록에 독도에 관한 기록이 나오면 “하여튼 독도는 아니다”라고 미리 단정한 후 울릉도 주변에 환상의 섬을 많이 만든다.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천체로서 그 크기는 태양과 같다”는 역사 기록이 있으면 달(moon)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일본의 입장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무조건 달은 아니다”라고 단정한 후, “그 천체에 해당하는 다른 별을 있거나, 아니면 허위기록이다. 어느 쪽이든 나한테는 마찬가지이니 나한테는 입증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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