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콰이강의 다리 ★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한 가지 있으니
전쟁이 미국 영국등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후,
당시 영국군 포로들의 증언으로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후에 사면되었으나 불행한 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콰이강은 비교적 수심이 깊고 수량도 풍부하고 유속이 빠르기 때문에
영화 "콰이강의 다리"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미얀마 국경 근처의 일본군 포로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다리를 폭파하러 오는 영국군 유격대의 워든 소령 과
그리고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다리를 폭파하러 다시 찾아가는 미군인 쉬어즈 소령
( 윌리엄 홀든 )
영화가 시작되면 한 떼의 남루한 복장,
헤어지고 다 떨어져 너덜너덜한 군복에
밀림 속에서의 상처로 피가 연신 흘러내리는 발
다 헤어진 군화 ,혹은 맨발,
처참한 몰골의 군인들의 행진,
보기에도 가련한 모습들이지만
열을 지어 당당한 걸음으로
씩씩하게 행진 해 온다.
밀림 속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식량이 떨어져
할 수 없이 일본군에 항복하게 된다.
처참한 모습이지만
당당한 결의로 행진해 올때
일제히 부르는 휘파람 소리.
유명한 이 영화의 주제곡.
바로 이 음악과 장면이 엔딩의 비극적인 장면과 함께
이 영화 최고의 장면으로
꼽히는 "Colonel Bogey March"다.
2차대전이 한창인때 일본군은 태국과 미얀마를 연결하는장거리
수송 철도 건설을 계획한다.
그리고 이 공사의 가장 큰 난관이던
콰이강 계곡 다리 건설에 노동자로영국군 포로들을 투입하려 한다.
포로수용소장이었던 일본군 사이토 대좌는 자결까지 각오하고
공사를 지휘한다.
사이토는 공기를 맞추기 위해공사에 장교들까지 투입하려 하지만
영국군 포로 지휘관인 니콜슨 대령은 제네바 협정을
거론하며 장교들을 노동에 투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맞선다.
할 수 없이 사이토는자신의 뜻을 꺾고
다리 공사의 지휘권을 니콜슨에게 넘겨 주게 된다.
그리고 니콜슨은 철저한 군인 정신으로 포로들을 이끌며
오히려 일본군의 강제적인 지휘때 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엔 포로들 안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같은 포로이던 영국군 의사는 니콜슨에게 일본군의 다리 건설을 돕는
행위는 반역이며 어쩔 수 없이 공사에 협력한다 하더라도 굳이 일본군 보다
더 열심히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니콜슨은 그 말을 무시한다.
그리고 그 의사에게 반문한다.
"당신은 의사로써 적군 부상자를
수술해야만 하게 된다면 최선을 다 하지 않을 것인가?"
콰이강에서 니콜슨이 다리 건설에 열심일 무렵
인도에 있던 영국군은 일본군의 전진을 막기 위해
콰이강의 다리를 폭파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곧 워든 소령을 지휘관으로 한 유격대가 편성되었고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미군 쉬어즈가
작전에 동참하게 되면서 작전을 위해 쉬어즈는
어렵게 탈출한 수용소로 다시 찾아간다.
드디어 다리는 무사히 완공되고 영국군 포로들이 자축의 밤을
보내는 가운데 굴욕감을 느낀 일본군 수용소 소장 사이토 대좌
개통식 전날 영국군 유격대는 다리에 폭약을 설치하지만
다음 날 아침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일본군 VIP를 태우고 온다는기차를 기다리던
니콜슨에게 발견된다.
니콜슨은 다리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다며
사이토와 함께 폭약이 설치된 도선을 따라가게 되고
영국군
유격대는 숨어서 그 장면을 보다가 아군인 니콜슨이 폭파 계획을
방해하고 있는 장면에 경악한다.
멀리서 일본군 VIP들이 타고 있는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니콜슨은 쉬어즈가 폭파를 멈추려는
자신을 저지하려다 총을 맞는 것을 보고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 리고 마치 꿈에서 깨듯 정신을 차렸을 무렵
그는 총을 맞고 휘청이는 몸으로
폭파 스위치를 누르며 죽는다.
다리는 폭파되고 달려오던 일본군의 기차는강속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던 영국군 의사가 내뱉는 혼잣말과 함께
영화가 끝이 난다. "미쳤군, 미쳤어.."
내가 뭘 한거지?
객관적으로 니콜슨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니콜슨의 그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신의 죽음으로 다리를 폭파하고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는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에서 첫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의 배경인 콰이강의 다리는 실제로 있는 다리로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415km의 철로 선상에 있으며
전쟁포로와
강제노역자들에 의해 일본군에 의해 건설되었다.
이때 총 8 만명의 노동자와 1만 3천여명의 전쟁 포로,
그리고 수천명의 일본군이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져 있다.
콰이 강을 찾아 가는 길
콰이강은 비교적 수심이 깊고 수량도 풍부하고 유속이 빠르기 때문에
- 스피드 보트로 콰이강을 역류하는 관광객들 -
- 리버 콰이 리조텔(River Kwai resotel) 선착장 -
리조텔이 있는데
계곡물을 역류하여 들어가는것이 더 운치가 있다.
계곡 맞은편 언덕위(표고 약 100m)에 조성된 대 단지의 리조텔은 외모로는
- 클럽 하우스 테라스 -
- 숲속에 지어진 방갈로우 들 -
- 2층 짜리방갈로우 -
필자가 묵었던 연못 옆에있는 첫번째 2층짜리 숙소(안내판)는 단지내에 4채가 있다.
- 숙소 내부 -
샤워 시설이 있다.
- 단지 중앙 연못위에 있는 컨벤션 센터 ? -
- 방갈로우 주변의 열대 식물들 -
- 도로가에 마련된 살아있는 신(?) 태국 푸미 폰 국왕의 어진(?)을 모신 제단 -
- 콰이강의 다리 옆의 상점들 -
- 콰이강의 다리와 철도를 설명하는 동판 -
사판(모형) 오른 쪽 아래에 보이는 1번 위치에 Original "콰이강의 다리"가 있다.
다음 사진의 목조 철교는 오리지날 철교보다 약간 하류에 위치하지만
-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등장하는 목조다리 -
- 영화의 한 장면을 화상하며 걸어볼 수 있는 목조 철교 -
암벽을 깎아내리며 난공사를 했던 곳이라 길은 없지만
- 철교 옆 동굴 사원 -
철교옆에는 깊지는 않으나 커다란 동굴이 있고 여기에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콰이강의 다리-
연합군 포로들이 건설했던 다리는 영화에서는 특공대원 윌리암 홀덴에 의해
폭파되지만 실은 미군의 폭격기에 의해 폭파되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이고 진실은 진실대로 인식 해야.
- 콰이강 상류쪽으로 이동하는 바지선 -
- 콰이강의 다리 오른편의 수상 위락시설들 -
- 태극기 휘날리며 -
일본인 단체가 속죄의 뜻으로
1977년 2월 7일 기증한다는 일본말 표지가 붙어있다.
- 팽창주의 중국사람들의 흔적 -
철교 끝 왼쪽에는 화군비(華窘碑)라는 중국군대의 참전을 기념하는 비가 있다.
자그마한 오벨리스크 형태의 비석에는 "외로운 군인 영원히 잠들다(孤軍永睡)"라는
비문과
앞서 소개한 사판 오른편 상단에는 일본과 한국인 10.000 명이 참여한 것으로 되어있고
이중 상당한 한국인이 전후 전범자로 처형되거나 비참한 생을 마쳤지만 잊혀진 역사로
이 묘지에는 영국, 네델란드, 호주, 미국 등 6,982 명이 묻혀 있다.
약자에겐 평화를 누릴 특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 미군이 새로 놓은 다리 를 걷는 관광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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