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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메밀꽃 필 무렵…‘효석문학 100리길’을 걷다



메밀꽃 필 무렵… 구름 속 배추들도 아삭아삭 익어간다

2012.8.31

‘효석문학 100리길’ 봉평∼평창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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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의 배추밭’ 안반데기. 강원 평창과 강릉 사이 해발 1100m 고지에 푸른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배추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푸른 잎사귀의 기운이 성성하다. 이제 곧 수확할 때다. 가을이다. 바람이 서늘하다. 물안개가 스멀스멀 밑도 끝도 없이 떠돈다. ‘아, 그러나 시방 우리는/각각 홀로 있다./홀로 있다는 것은/멀리서 혼자 바라만 본다는 것/허공을 지키는 빈 가지처럼...//가을은/멀리 있는 것이 아름다운/계절이다.’(오세영의 ‘가을에’에서). 배추밭둑엔 보랏빛 쑥부쟁이가 지천이다. 노란 달맞이꽃이 건들거리며 떼로 서 있다. 푸른 달개비꽃이 요염하다. 저 멀리 산등성이 위엔 하얀 양떼구름이 아득하다. 평창=서영수 전문 기자 kuki@donga.com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이효석(1907∼1942)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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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메밀꽃이 하나둘 피고 있는 평창 봉평 산자락.



하얀 메밀꽃이 피었다. 산허리의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힌다. 메밀의 붉은 대궁이 이슬에 젖어 항라 적삼처럼 아슴아슴하다. 메밀꽃은 아직 일러 자잘하다. 우우우 떼로 피려면 열흘쯤 더 있어야 한다. 그래도 제법 풋풋한 향기가 알싸하다.



강원 평창 봉평에 가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살갗에 ‘연한 소름’이 돋는다. 매미소리가 잦아들면서 “찌르르∼” 여치 울음소리가 저릿하다. 산허리엔 드문드문 싸락눈이 온 듯 희끗희끗하다. 껑충 큰 노란 마타리꽃이 불쑥불쑥 고개를 주억거린다. 건들건들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햐얀 개망초꽃과 노란 달맞이꽃이 지천으로 깔깔댄다. 물봉선이 오종종 모여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보랏빛 쑥부쟁이는 이미 기세등등하게 활짝 피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장돌뱅이 허생원은 봉평 흥정천을 따라 밤길을 걸었다. 흥정천 물은 차고 맑다. 쫄쫄! 물소리가 아늑하다. 같은 또래 조선달과 아들뻘인 동이는 말이 없다. 보름을 갓 지난 달빛은 우윳빛처럼 부드럽게 흠뻑 쏟아져 내린다. “딸랑딸랑!” 발에 밟히는 늙은 나귀의 방울소리가 애잔하다. 봉평에서 장평을 거쳐 대화까지는 무려 팔십 리(32km) 길. 지금은 곧게 펴진 아스팔트길로 15km에 불과하지만, 강과 산을 끼고 도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구불구불 서두름이 없다.

‘효석문학 100리길’은 봉평에서 평창까지의 49.2km에 이르는 길이다. 모두 5개 코스 중 제1구간(7.8km)만 길이 열렸다. 봉평관광안내센터∼메밀밭∼흥정천교∼강변집 앞길∼백옥포마을∼금당계곡로∼노루목고개∼용평여울목까지 이효석의 체취가 가장 많이 묻어 있는 곳이다. 느릿느릿 걸어도 2시간 30분 정도면 걸을 수 있다. 허생원과 성씨 처녀의 사랑이 깃든 물레방앗간과 흐드러진 메밀꽃밭을 만날 수 있다.

이효석은 봉평에서 태어나 어릴 적 서당에 다녔지만 초등학교는 당시 대처인 평창에서 마쳤다(1914∼1920년). 아마도 평창에서 하숙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요일이나 방학 땐 장돌뱅이 허생원이 다녔던, 그 길을 따라 평창∼봉평을 오갔을 것이다. 대화는 바로 봉평과 평창 사이에 있다.

메밀은 강인하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건조한 곳에서도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다. 갈색 메밀은 작고 세모졌다. 단단하고 서늘하다. 속이 뜨거운 사람에게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찬 음식에 약한 사람은 배탈이 날 수 있다. 메밀국수는 들큼 텁텁하다. 오래된 친구처럼 담담하다.

춘천막국수나 평창 봉평 메밀국수나 그게 그거다. 서울에서 ‘국수’라고 하고, 안동에서 ‘국시’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이라면 국물이 좀 다르다는 것 정도다. 봉평은 동치미에 과일 채소 국물 등을 많이 넣는다.



‘내 마음 지쳐 시들 때
호젓이 찾아가는 메밀꽃밭
슴슴한 눈물도 씻어 내리고
달빛 요염한 정령들이 더운 피의 심장도
말갛게 심어준다.

그냥 형체도 모양도 없이
산비탈에 엎질러져서
둥둥 떠내려 오는 소금밭

아리도록 저린 향내
먼산 처마끝 등불도 쇠소리를 내며
흐르는 소리’

-송수권의 ‘메밀꽃밭’



평창은 여름이 거의 없다. 해발 700m가 넘는 곳이 62.5%나 된다. ‘하늘이 낮아 고개 위가 겨우 석 자’(정도전)라는 말이 실감난다. 평창읍은 평창강이 휘돌아나가는 물돌이 동네다. 마치 평창강이 평창읍내를 으스러지게 껴안고 있는 듯하다. 장암산(836m)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가면 발아래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푸른 하늘 아래 푸른 산과 푸른 물이 어우러져 ‘아라리∼아라리∼’ 돌고 돌아간다. 뭉게구름 너머 앞산이 첩첩하고 뒷산도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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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랭지 배추밭 ‘안반데기’… 해발 1100m에 안반처럼 평평한 둔덕이 198만m²▼


강원 산간지역 경작지는 거의 쪼가리 밭이다. 한마디로 ‘높드리’라고 할 수 있다. ‘높드리’는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뙈기밭’을 이르는 순수한 우리말. 산허리나 산등성이에 듬성듬성 조각보처럼 놓여 있다. 그 크기도 들판에서처럼 ‘100평 200평…’식으로 세지 않는다. 보통 ‘가리’나 ‘둔(屯)’을 쓴다.

‘가리’는 골짜기 곳곳에 ‘밭갈이할 만한 땅’을 말한다. 가령 ‘아침가리’란 아침햇살이 잠깐 비칠 때 부쳐 먹을 만한 땅이다. 한자로는 ‘朝耕洞(조경동)’이라고 한다. 연가리는 옛날 담배농사(연초)를 많이 했던 밭이다. 적가리는 가을에 단풍이 붉게 드는 곳. 보름가리는 보름은 갈아야 하는 넓은 땅이다. 인제 4가리가 유명하다. 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곁가리·방태산휴양림 자리), 명지가리가 바로 그곳이다.

둔(屯)은 사람들이 모여 살 만한 산기슭의 평평한 둔덕을 말한다. 홍천군 내면 쪽에는 3둔이 있다. 살둔(생둔), 월둔, 달둔이 그렇다.

대관령 일대엔 고랭지 배추밭이 유명하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의 ‘구름 위에 떠있는 배추밭’이다. 원래 자갈만 있던 둔덕을 사람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곳이다. 아직도 일부 뙈기밭은 소로 밭갈이를 해야 한다. 안반데기, 육백마지기, 귀네미 등 이름도 재밌다. 이 중 안반데기는 해발 1100m의 높은 곳에 198만 m²(약 60만 평)의 너른 배추밭이 장관이다. 1965년 화전민들에게 국유지를 개간하게 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는 20여 농가가 살고 있다. 고루포기산(1238m) 일대에 남북으로 독수리날개처럼 펼쳐졌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해돋이도 황홀하다.033-655-5119 

‘안반’은 떡메로 떡을 칠 때 밑에 받치는 안반을 말한다. 땅이 평평해서 붙은 이름이다. ‘데기’는 둔덕의 ‘덕’을 말하는 사투리다. ‘안반처럼 평평한 둔덕’이라는 뜻이다. 안반데기의 행정구역은 강릉시 왕산면에 속하지만 그 너머는 바로 평창군이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갈 때도 평창 쪽으로 가는 게 편리하다. 횡계나들목∼용평리조트 방면∼리조트입구 삼거리에서 도암댐 방면 직진∼도암댐 못 미쳐 왼쪽 고갯길로 가면 된다. 아스팔트길이라 일반 승용차로도 너끈하게 올라갈 수 있다.

육백마지기는 평창 미탄면 청옥산(1256m) 정상 부근에 있다. 말 그대로 육백마지기(약 12만 평)쯤 되는 널찍한 배추밭이다. ‘볍씨 육백 말(斗)을 뿌릴 수 있는 곳’이란 설도 있다. 안반데기보다 돌이 더 많고 오르는 길도 험하다. 이곳도 1960년대 개간했다.

태백 귀네미 마을은 1980년대 삼척댐공사로 발생한 수몰민들이 집단 이주해 일군 땅이다. 65만3000m²(약 19만7000평) 넓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모습이 ‘소의 귀’를 닮아 ‘귀네미’라고 부른다. 배추밭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보는 동해 해돋이도 소문났다. 이 밖에 함백산 너머 태백 매봉산(1303m) 북쪽 기슭의 고랭지배추밭 132만 m²(약 40만 평)도 빼놓을 수 없다. 하얀 풍력발전기와 푸른 배추밭의 어우러짐이 볼만하다.

배추는 섭씨 20도 이하의 선선한 날씨에 밤낮 기온 차가 커야 맛있다. 고랭지배추가 아삭아삭하고 단 이유다. 고랭지배추는 노란 속잎이 꽉 찬 결구배추다. 1800년대 중반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잎이 벌어져 푸른 잎사귀만 있는 것은 토종배추다. 고랭지배추는 5월 중순께 모종을 심어 2개월쯤이면 다 자란다. 8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거둬들이기 시작한다. 요즘이 넓은 고랭지 배추밭을 볼 수 있는 끝물 기회인 셈이다.


9월 7일부터 ‘효석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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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의 이효석문학관. 이효석은 이곳에서 ‘장에서 장으로
떠도는 장꾼’들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평창 봉평 일대에선 해마다 메밀꽃 축제(효석문화제)가 열린다. 봉평은 가산 이효석 선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무대일뿐더러, 가산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9월 7일부터 16일까지 10일 동안 펼쳐진다. 이효석문학상 시상을 비롯해 백일장, 시낭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 마당극 ‘메밀꽃 필 무렵’과 거리 민속놀이, 국악제도 곁들여진다. 메밀음식이나 봉평 옛 시골장터의 정취도 맛볼 수 있다. 지난해 축제기간 방문객은 35만여 명.

김성기 이효석문학관 관장은 “축제기간 메밀꽃은 피겠지만, 올해 너무 가물어서 메밀 키가 무릎쯤밖에 차지 않을까 걱정이다. 예년처럼 메밀대궁이 허리 위쯤까지 껑충 올라와야 하는데…. 아마 9월 10일쯤 꽃이 가장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가나 문학관 주변보다는 무이예술관 부근의 꽃이 훨씬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화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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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문의 로드포엠]메밀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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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 연가

꽃이 피고, 그 꽃길을 걸었지요
나지막한 꽃들은 정강이를 적시고 우리,
그저 흐드러졌지요

노래로 치면 어찌 꽃만이야 하겠으나
사랑이야 남김없이 우리들 몫이니 그저,
흐드러졌지요

햇빛은 오롯이 옥수수 이파리에서만 반짝이고
꽃대궁은 꿈결인 양 슬려 다녔어요

바람이 일고, 그 바람에 대고 속삭였지요…
사랑한다고-


봉평 메밀꽃밭*


해마다 9월이 오면 강원도 평창 봉평 일대는 온통 새하얀 메밀꽃 천지가 된다.
한때 수익성에 밀려 사라지는 듯했던 메밀밭이 다시 봉평 일대를 뒤덮게 된 것은 순전히 한 편의 소설 때문이었다.

가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장돌뱅이의 삶과 애환을 그린 이 한 편의 소설은 작가의 고향 봉평을 무대로 해서 태어났다. 비록 장평에 있던 가산의 묘소는 1998년 유족과 주민들 간의 한바탕 실랑이 끝에 끝내 파주의 통일공원으로 이장되고 말았지만, 고향 사람들은 그의 소설과, 소설이 주는 향취를 무던히도 되살려냈다.

그 사연이 어떠하든 메밀꽃은 다시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그 소설의 줄거리야 어떠하든 연인들은 메밀밭에서 마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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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road

영동고속도로 둔내IC - 양두구미재 - 태기산|고산야생화 - 보광휘닉스파크 - 봉평|효석문화제(9월8일~17일)/이효석생가/이효석문학관/가산공원/재래장터/흥정계곡/허브나라/무이예술관 - 대화장 - 금당계곡


길은 지금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의 메밀꽃을 보러 가는 길은 봉평이나 대화, 아니면 진부에서라도 장이 서는 날이 좋다. 이 시골장터들이야말로 '메밀꽃 필 무렵'의 주무대들이다. 비록 규모도 줄어들고 옛 모습도 거지반 잃어버려 소설 속 같은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강원도 산골장터의 면모를 더듬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에 하나들이다.

마침 봉평장은 2·7일, 진부장은 3·8일, 대화장은 4·9일장이므로 1과 10으로 끝나는 날만 피한다면 세 곳 중 한 곳은 넉히 둘러볼 수가 있다.

옥수수와 감자 같은 풋것들을 좌판이랍시고 벌린 할멈이나, 도무지 이런 시골바닥에서는 별 효용이 없을 것 같은 분재화분들을 늘어놓고 긴 간이의자에 누워 늘어지게 잠만 자는 장사치나, 장터 한 구석에서 메밀전 지지는 냄새로 시장에 겨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인심 좋게 생긴 아낙들로 이루어진 풍경은, 적어도 내게는 메밀꽃보다 더 토속적이고 더 탐미적이다.

어쩌다가 허름한 주막이라도 기웃거릴라치면 탁배기 한 잔에 시름을 나누는 노인네들의 담소 속에서 '허생원'이나 '동이'의 후일담이다 싶은 이야기들을 엿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했다. 몇 점 남지 않은 이 낡은 풍경들은 이미 과거의 몫이고, 이내 사라질 시간들에 속한다. 장터를 벗어나기 무섭게 이국적인 팬션들이며 이물스런 건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양두구미재 아래 휘닉스파크나 흥정계곡 깊숙이 들어앉은 허브나라의 풍경은 어떠한가.

한겨울 설원을 뒤덮는 원색의 스키복 물결이나, 사시사철 허브티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아로마향 같은 정담을 나누는 젊은것들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주눅이 들고야 만다. 객기를 부려 기를 쓰고 그들 사이를 비집어보지만, 얼마 가지 않아 마치 발에 맞지 않은 신발을 신은 사람처럼 뒤처지기 십상이다. 이러니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의미에서의 '된장남'인 게다.

글·사진/유성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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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줄거리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 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온갖 피륙을 팔던 가게)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나꾸어보았다.

드팀전의 허 생원과 조 선달이 장을 거두고 술집에 들렀을때 벌써 먼저 온 동업의 젊은 녀석 동이가 계집을 가로채고 농탕치고있었다. 허 생원은 괜히 화가 나서 기어코 그를 야단쳐서 쫓아내고 말았다. 장돌뱅이의 망신을 시킨다고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 그는 얼마 후 되돌아와서 허 생원의 나귀가 발광을 하고 있다고 일러 주는 것이었다. 허 생원은 어이가 없었다. 얽음뱅이요 왼손잡이인 허 생원은 계집과는 인연이 멀었다. 때문에 장돌림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건만 아직 홀몸이었다. 그러므로, 자신과 늘 함께하는 나귀의 신세가 느꺼웠던 것이다.

밤이 들어 허 생원은 조 선달과 동이와 함께 나귀를 몰고 다음 장으로 발을 옮겼다. 봉평장으로 가기 위해서다. 달이 환히 밝았다. 달밤이면 으례, 허 생원은 젊었을 때 봉평에서 겪었던 옛일을 애기하는 것이었다.

개울가에 모밀꽃이 활짝 핀, 달 밝은 여름 밤이었다고 한다. 그는 멱을 감을 양으로 옷을 벗으러 방앗간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울고 있는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나서 어쩌다가 정을 맺었던 것이다. 그녀는 봉평서 제일 가는 일색이었다. 그는 오늘도 기이한 인연에 얽힌 이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동행을 하다가 허 생원은 이날 밤 동이가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난 사생아임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그의 어머니의 고향은 봉평이라 했다. 허 생원에게는 맺히는 것이 있었다. 동이 어머니가 제천에서 홀로 산다는 말을 듣자 그는 놀라 개울에 빠지게 된다.

이튿날 그는 동이를 따라 제천으로 가 볼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문득, 그는 나귀를 몰고 가는 동이의 채찍이 동이의 왼손에 잡혀 있음을 똑똑히 보았다. 아둑시니같이 어둡던 그의 눈에도 이번만은 그것이 똑똑히 보이는 것이 었다.

오래간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신이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인간 심리의 순수한 자연성을 허 생원과 나귀를 통해 표출하고 있는 낭만주의적인 소설이다. 강원도 땅 봉평에서 대하에 이르는 팔십리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그 길을 가는 세 인물의 과거사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연적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늙고 초라한 장돌뱅이 허생원이 20여년 전에 정을 통한 처녀의 아들 동이를 친자로 확인하는 과정이 푸른 달빛에 젖은 메밀꽃이 깨알깨알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밤길 묘사에 젖어들어 시적인 정취가 짙게 풍겨나온다. 낭만성과 탐미주의 성향이 어우러진 이효석 문학의 대표작이다.

서정주의적 경향이 많으며 암시와 추리를 통해 주제를 간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대화 형식으로 플롯이 진행되며 반복되는 지명(地名)으로 의식과 감정을 고조시킨다.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많으나 파장 무렵의 시골 장터의 모습이나, 주인 허 생원을 닮은 나귀의 모습이나, 메밀꽃이 하얗게 핀 산길의 묘사같은 것은 뚜렷한 사실성을 가지고 서술되었다.

허 생원이 동이가 친자(親子)라는 것을 확인한 후의 모든 기쁨은 독자의 상상력에 유보되어 있다. 물론, 확인하는 과정의 중요한 단서가 된 '왼손잡이'가 과연 유전이냐 하는 의문은 걷어 치우고라도 허 생원과 친자로 예상되는 동이가 모두 장돌뱅이라는 사실은 부전자전(父傳子傳)의 동일성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티브는 김동리의 [역마]에도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김유정과 같은 고향인 봉평에서 오래 살았다는 황일부 노인에 의해 거의 모든 등장인물, 특히 허 생원과 충줏집이 실제 인물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개관 정리

▷ 주제 : 장돌뱅이 생활의 애환을 통한 인간 본연의 속성으로서의 애정
떠돌이의 삶을 통해 본 인간 본연의 애정
▷ 성격 : 낭만적. 서정적. 묘사적.
▷ 갈래 : 단편 소설, 본격 소설, 순수 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낭만적, 서정적, 묘사적, 유미적(서정적 소설→시적 소설)
▷ 구성 : 단일 구성
▷ 표현
- 향토적 어휘
- 대화체 문장
- 갈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음
- 두 축(남녀의 만남과 헤어짐 + 친자 확인)
▷ 행선지 : 봉평→대화→제천
▷ 배경 : 오후∼밤중, 봉평∼대화의 산길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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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28년 '조선지광'지에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효석의 문학은 시적 서정을 소설의 세계로 승화함으로써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적 묘사보다는 장면의 분위기를, 섬세한 디테일보다는 상징과 암시의 수법을 이용하는 그의 문체는 우리 단편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에 이르러 전성기를 누렸다.

또한 '돈''메밀꽃 필 무렵'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성(性)의 탐색을 통해 그는 일제시대의 암울한 현실과 대비되는 순수하고, 순결한 세계를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性)과 결합시킨 시적 서정소설로 새로이 개척해냈다.

이로써,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와 함께 당시 이태준, 박태원 등과 함께 대표적 작가로 주목받았던 이효석은 그러나 그의 황금 같은 문학적 결실을 다 누려보지도 못한 채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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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21~24일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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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과 30일 홍천 대명 비발디 파크 소노펠리체 살롱 콘서트에서 이효석 원작 우종억 작곡의 '메밀꽃 필 무렵'이 오페라 갈라 형식으로 열렸다.
 
'메밀꽃 필 무렵'은 탁계석 평론가가 대본을 쓰고 우종억 작곡가가 4년여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이효석 문학의 탁월한 서정성을 음악예술로 한 차원 높게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 오페라연합회로 부터 대한민국오페라대상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

그간 지자체 마다 자기 고장을 알리기 위해 이순신, 안중근, 유관순, 박정희 등 역사물 중심의 창작오페라를 올렸지만 그 대부분이 일회성 공연에 그치고 말았다. 관객의 반응 또한 기대에 못 미쳐 창작오페라가 침체된 분위기에서 '메밀꽃...' 오페라는 문학오페라로 한국창작 오페라의 새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관객들은 "서양 오페라에서는 누가 주인공인지, 원어로 해서 줄거리 조차 잘 알 수 없었던 답답함이 있었는데, 우리 오페라를 보니 마치 햄버거나 치즈만 먹다 된장이나 김치를 먹은 듯 시원함을 느꼈다"는 반응들.
 
허생원 역을 맡은 김승철 교수는 "오늘은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올렸지만 하루속히 본 무대인 봉평에서 제대로의 오페라 작품이 무대에 오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고 동이 역의 손정희 테너는 "이 작품은 세계무대로 나가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작품인 만큼 우선 전국 투어를 통해 확산 시킨후 세계로 뻗어가는 오페라로 푸치니나 베르디의 수입구조에서 벗어나 21세기는 오페라를  수출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첫날 관객들은 이 오페라의 백미인 허생원의 아리아 '메밀꽃은 달빛에 흔들리고'를 탁 평론가의 가창지도로 아리아를 배웠고 공연 직후 관객들이 출연진과 합동 촬영, 사인회를  하는 등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  살롱콘서트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 날의 배역은 허생원 김승철(바리톤), 여인 구수민(소프라노), 동이 손정희(테너), 조선달 홍순포(베이스) 주모 이수미(메조 소프라노) 피아노 박은순과 연출 정철원.

한편 대명 레저산업 측은  "고객들에게 최고의 문화 서비스를 위해 격조 높은 콘서트를 정례화해 레저와 문화가 조화를 이룬 최고의 레저문화를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탁계석 평론가는 "이번 공연에  호응이 너무 좋아 강원도 전역을 투어 할 계획이라며, 강원도와 교육청, 예총과 협의 시, 군과 학교 순회를 통해  지역에서부터 오페라를  애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곧 강원 지역  음악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오디션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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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메밀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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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허생원에게 있어 가장 기쁜 날이라면 나귀를 장만한 날이었다.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그 이전에도 나귀에 짐을 싣고 장을 돌아다녔지만,
병으로 맥없이 죽자 새로 장만한 것이다. 몇 살 되지 않은 나귀를 ‘백근’이라
부르며 허생원은 좋아했었다. 백근이나 되는 짐도 문제없이 싣고 다니는 힘 좋은 나귀가 되라고 붙여준 이름이다.

후에야 허생원이라 부르기도 좋고 듣기도 좋은 별칭이 생겼지만, 젊은 날의
허생원은 그저 허곰보일 뿐이었다. 비록 혼자서 드팀전을 열어 열불나게 장을
돌아다니며 돈을 벌었지만, 얼굴엔 얽은 마마자국이 있는데다 여자 앞에서
지나치게 수줍음을 타서 제대로 된 계집 하나 물지를 못하였다. 함께 다니던
개똥이는 번질거리는 말로 여자를 잘도 후린다. 허생원은 부럽기도 했지만
재주가 없어서 번번이 여자에게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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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이는 허생원의 말을 잘 따라주었다. 그야말로 백근도 넘는 짐을 척척
지고 다니며 산길이나 들길이나. 때로는 강에까지도 서슴없이 뛰어들었다.
젊은 날의 허생원은 장돌뱅이 삶을 빨리 그만두고 싶어했다. 어디 조그만 데
객주집이라도 열어서 마누라 얻고 자식 낳아 알뜰살뜰 사는 게 꿈이었다.
돈도 제법 벌렸다. 게다가 충주장에 가면 늘 어미와 함께 곡식을 팔러 나오는
금녀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금녀도 허생원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허생원은 제법 돈을 모았다. 조금만 이를 악물면 가게도 얻고, 금녀를 마누라로 얻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허생원은 충주장으로 가는 길에 백근이 목을 쓸며
오늘은 꼬옥 금녀에게 고백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이 꼬일려고 그랬는지, 금녀는 그새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허랑방탕한 개똥이의 여자가 말이다. 허생원은 열이 치받았다. 감히 어쩌지도 못하고 뒤돌아 나온 허생원은 고향으로 돌아가 두문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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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부모님도 계시지 않고 늙은 당숙이 있을 뿐인 고향... 자그마한 객주집이라도 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고향이지만 허생원에게는 모든 것이 부질없이
느껴질 뿐이었다. 결국 허생원은 읍내에서 벌어진 투전판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자 허생원의 가게 밑천은 모두 깨져버리고 처음엔 허생원을 반겨 끌어들이고 빚까지 줬던 타짜들은, 허생원을
몰아세우며 당장 빚을 갚지 않으면 나귀라도 팔겠노라고 위협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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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
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을 나꾸어 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 장에서 한번이나 흐붓하게 사본 일 있었을까.
내일 대화 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 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 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과
주단 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꾼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해 놓고 계집의 고함 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충줏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두 않을걸. 축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렇다곤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줏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고 낚었나 부지. 착실한 녀석인 줄 알었더니."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궁리 말구 가보세나그려. 내 한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얼금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 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으나,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 충줏집 문을 들어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버렸다.

상 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꾼인데 꼴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칠 때, 결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 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게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 다 지껄였다 ―
어디서 주워 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 좋겠다. 장사란 탐탁하게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그러나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도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짓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도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낫세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세울 것은 무어야, 원. 충줏집은 입술을 쫑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 하고 그 자리는 조 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문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담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 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채서는 어떡할 작정이었누 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 편에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얼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레벌떡거리며 황급히 부르러 왔을 때에는, 마시던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 없이 허덕이며 충줏집을 뛰어나간 것이었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달음질하려니 거슴츠레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다.

"부락스러운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는 않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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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평생을 같이 지내 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까스러진 목 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꼽이 흘렀다. 몽당비처럼 짧게 쓸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 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 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리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히는 썩였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한 눈치여서 땀 배인 몸뚱어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 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라 비슬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흘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를 쳤다.

"고 녀석 말투가."

"김첨지 당나귀가 가버리니까 왼통 흙을 차고 거품을 흘리면서
미친 소같이 날뛰는걸. 꼴이 우스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우. 배를 좀 보지."   
아이는 앵돌아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뭇 시선을 막으려고 그는 짐승의 배 앞을 가려 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아이의 웃음소리에 허 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코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 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그만 채찍을 던졌다.
술기도 돌아 몸이 유난스럽게 화끈거렸다.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
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걸."

조 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드팀전 장돌이를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 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 지방도 헤매이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지반 가까웠을 때, 거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 ― 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 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 본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여 사흘 동안에 다 털어 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끊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아미타불로 장돌이를 다시 시작할 수밖에는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던 것이었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 재산을 모을 염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계집 하나 후려 보지는 못하였다.
계집이란 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었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졌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 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 번의 첫 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 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허 생원은 오늘 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 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도 없었으나 허 생원은 시침을 떼고 되풀이할 대로는 되풀이하고야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 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 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 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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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주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나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 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팔자에 있었나 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
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는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었으나 성 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날 판인 때였지. 한 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련만 시집은 죽어도 싫다지…… 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

"제천인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날이었나?"

"다음 장도막에는 벌써 온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끈 뒤집혀
고작해야 술집에 팔려가기가 상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자들 하단 말이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하나 처녀의 꼴은 꿩 궈먹은 자리야.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수 좋았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 새끼 낳고,
걱정 늘고 생각만 해두 진저리나지…… 그러나 늘그막바지까지 장돌뱅이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애와두 하직하려네.
대화쯤에 조그만 전방이나 하나 벌이구 식구들을 부르겠어.
사시장철 뚜벅뚜벅 걷기란 여간이래야지."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렷다. 충줏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섧게 생각 말게."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계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
자나깨나 어머니 생각뿐인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애비 에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걸요."

"돌아가셨나?"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내 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내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벌리기도 대견하여 이야기는 한동안 끊겼다. 나귀는 건듯하면  미끄러졌다.
허 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고 다리를 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 동이 같은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땀이 등을 한바탕 쪽 씻어 내렸다.

고개 너머는 바로 개울이었다. 장마에 흘러 버린 널다리가 아직도 걸리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었다. 고의를 벗어 띠로 등에 얽어매고 반 벌거숭이의 우스꽝스런 꼴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금방 땀을 흘린 뒤였으나 밤 물은 뼈를 찔렀다.

"그래, 대체 기르긴 누가 기르구?"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 가서 술장사를 시작했죠.
술이 고주래서 의부라고 전망나니예요. 철들어서부터 맞기 시작한 것이
하룬들 편할 날 있었을까. 어머니는 말리다가 채이고 맞고 칼부림을 당하곤
하니 집 꼴이 무어겠소. 열여덟 살 때 집을 뛰쳐나와서부터 이 짓이죠."

"총각 낫세론 심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더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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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센 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 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넜으나
동이는 허 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 해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인구?"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 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
디디었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 버렸다. 허비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으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안됐네. 내 오늘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염려하실 것 없어요."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늘 한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

"의부와도 갈라져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셔 오려고 생각 중인데요.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렷다?"

동이의 탐탁한 등허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오, 생원."
조 선달은 바라보며 기어코 웃음이 터졌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 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긋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 새끼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치울 젠 딴은 대단한 나귀 새끼군."

허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에겐 더운 물을 끓여 주고. 내일 대화 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출전:조광12(19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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