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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꼐가 미국을 필요로 하는 이유

By ROBERT KA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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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Great Seal/Illustration by The Wall Street Journal
International orderis not an evolution; it is an imposition. It will last only as long as those who favor it retain the will and capacity to defend it.

역사적으로 볼 때 현재 우리 질서를 비롯한 세계 질서는 계속 변한다. 세계 질서들은 흥했다가 망하며 그것들이 세운 기관과 신념, 그 질서들의 길잡이인 “규범”, 이들의 경제 체제 역시 흥하고 망한다. 로마 제국의 멸망은 로마의 지배 뿐 아니라, 로마 정부, 로마법 그리고 북유럽에서 북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전체 경제 체제 모두에 종말을 가져왔다. 문화, 예술, 심지어 과학과 기술의 진보까지도 수세기 동안 후퇴했다.

근대역사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펼쳐졌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국의 해상 장악과 유럽 대륙에서의 열강들의 균형은 상대적 안보와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번영이 확산되고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었으며 세계는 상업과 통신의 혁명으로 인해 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세계 1차 대전의 발발로 안정된 평화와 유럽 문명이 정점으로 치닫던 자유주의 진보의 시대는 극단주의적 민족주의, 독재주의, 경제적 재앙의 시대로 붕괴되었다. 한때 전도유망했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확산은 멈추더니 뒷걸음질 치면서 수적으로 열세한 수세에 몰린 소수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극우 전제주의 이웃 국가들의 그늘에 가려져 불안에 떨며 살게 되었다. 20세기 영국과 유럽 질서의 몰락이 새로운 암흑의 시대를 낳지는 않았다(만약 독일의 나치와 일본의 제국주의가 득세했다면, 아마도 암흑의 시대를 낳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로 인한 끔찍한 갈등 역시 파괴적이었다.

지금의 미국 중심 질서가 종결된다면 그 결과는 그 보다 덜 끔찍할 것인가? 많은 미국의 지식인, 정치인, 정책 입안자들은 그러한 전망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지배의 시대의 끝이 만약 혹은 실제로 도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폭넓은 자유, 유례없는 세계 번영 (비록 지금은 경제 위기 상태이지만) 그리고 열강들 간의 전쟁 부재라는 현재 국제 질서의 종결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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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anger Collection, New York
Increasing tension and competition saw its climax in World War I (U.S. troops in France, 1918, pictured here).

미국의 힘은 줄어들지도 모른지만 “자유주의적인 국제 질서의 기본 근간은 살아남아 번영할 것이다”라고 정치학자 G. 존 이켄베리는 주장한다. 논평가 파리드 자카리아는 힘의 균형이 미국이 아닌 다른 쪽으로 기울어진다 해도 중국과 같은 부상하는 강대국들은 “계속해서 현재 국제 시스템의 틀 안에 살아갈 것이다”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미국 정치적 영역 전반에 걸쳐 “포스트 미국 시대”가 현 미국 중심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부류들이 있다.

만약 이 모든 말이 너무 좋아서 믿을 수 없다면 정말 그렇다. 현재 세계 질서는 주로 강대국 미국에 의해서 형성되었으며 미국의 이익과 선호도를 반영한다. 권력의 균형이 다른 나라로 기운다면 세계 질서는 그들의 이익과 선호도에 맞추어 변할 것이다. 포스트 미국 시대의 모든 열강들이 현 질서 보존으로 인한 혜택에 동의할 것인지를 단언할 수 없으며 설사 원한다 해도 보존할 역량을 보유하고 일을 지에 대해서도 쉽게 말할 수 없다.

민주주의라는 문제를 살펴보자. 수십 년 동안 세계의 힘의 균형은 민주주의 정부들에게 기울어 있었다. 진정한 포스트 미국 시대가 오면 그 균형은 열강의 전제 국가들에게로 기울어질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이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같은 독재자를 보호하고 있다. 만약 미래에 그들이 거대한 연계적 영향력을 얻게 된다면 민주화는 밀리고, 권력에 목을 매는 독재자는 많아지는 상황을 보게 될 것이다. 한편, 만약 부상하는 민주주의 국가 – 브라질, 인도, 터키, 남아프리카 공화국 – 중 일부가 미국의 약세로 인해 권력을 떠맡게 된다면 새로운 다극적 세계의 균형은 민주주의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기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 국가가 모두 그런 일을 할 의지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 시장주의와 자유 무역이라는 경제 질서는 어떤가? 사람들은 중국을 비롯해서 현재 시스템에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다른 신흥 열강들이 이러한 경제 질서를 보존하는 것에 이해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러한 경제 체제 자체만으로 자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의 형성과 생존은 해상 권력을 통해 자유 무역과 자유 시장 체제를 지원하기를 원하며 실제 지원 능력이 있던 열강들에 의존해 왔다. 만약 미국의 쇠락으로 인해 공해상에서의 장기 패권주의가 유지될 수 없다면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공백을 채우고 해상력을 존속시키는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설사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공공연한 세계적 기정 사실이 될 것인가 – 아니면 긴장감을 증폭시킬 것인가? 중국과 인도는 대규모 해군을 만들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 결과는 경쟁 심화였지 안보의 증대는 아니었다. 본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모한 말릭이 주지했던 것처럼 그들의 “해상 경쟁은 십여 년 혹은 이십여 년 후 공개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만약 인도가 구축함을 태평양에 배치하면 중국은 인도양에 배치한다. 미국 중심의 해상에서 몇몇 열강들에 의한 집단적 치안은 자유로운 경제 질서보다는 경쟁과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은 진정 개방 경제 체제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 중국 경제는 곧 세계 최대 경제로 부상할 것이지만 가장 부유한 경제체제가 되기에는 아직 길이 멀다. 중국의 경제 규모는 중국의 엄청난 인구의 산물이지 일인 당으로 환산했을 때 중국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가난하다. 미국, 독일, 일본은 일인당 GDP가 4만 달러 이상이다. 중국의 일인당 GDP는 4천 달러를 조금 상회할 뿐이며 이는 앙골라, 알제리, 벨리즈와 같은 수준이다. 설사 낙관적 전망대로 된다 하더라도 중국의 2030년까지의 일인당 GDP는 여전히 미국의 반 정도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오늘날 슬로베니아와 그리스 수준일 것이다.

알빈드 수브라마니안과 여타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이는 역사적으로 독특한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이다.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지배적인 경제국가들은 또한 가장 부유한 국가들이기도 했다. 비교적 자유적인 경제 체제하에서 이 국가들의 국민들은 분명 승자였으며 그러므로 이들 국가들은 보호주의적 조치들을 추구하려는 유혹이 적었고 경제체제를 개방하려는 동기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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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3rd Class Kenneth Abbate
The Nimitz-class aircraft carrier USS John C. Stennis transits the Pacific Ocean.

중국의 지도부는 자국의 경제를 개방하고자 하는 의지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이미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일부 산업 부분을 폐쇄하였으며 미래에 다른 분야도 폐쇄할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수브라마니안과 같은 낙관주의적 경제학자들 조차도 자유주의 경제 질서는 이전 정책을 번복하거나 현재 고도로 보호되고 있는 경제 영역 개방의 실패를 통한 중국의 장악력 행사라는 시나리오를 막을 수 있는 “어떤 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경제적 지배는 세계 상당 지역에서 환영 받는다. 이유는 “대부”의 갱단원 하이먼 로쓰가 말했듯이 미국은 항상 그 협력자들을 위해서 돈을 벌어왔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적 지배에 대한 반응은 다를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중국의 자본주의는 주로 국가가 장악하고 있으며 궁극적인 목적은 공산당의 체제 유지이다. 영국이나 미국이 지배했던 시대에는 주로 민간의 개개인과 기업이 주요 경제 대국을 장악해 왔지만, 중국의 체제는 지난 세기 동안 중상주의적인 타협에 더 가까웠다. 체제 유지를 계속하면서 다른 열강들과 경쟁할 군사력 및 해군력에 대한 비용을 치르기 위해 이들 정부들은 부를 축척해 왔다.

비록 중국이 개방된 국제 경제 질서의 수혜자라 하더라도 그 체제를 저해할 수 있다. 전제주의적 사회로써, 이들의 우선순위는 국가의 부와 그에 따른 권력의 통제를 지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마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보존, 그리고 자신들의 생존을 동시에 보존할 방법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60여 년 동안 열강들 사이에서 유지되었던 오랜 평화는 어떤가? 포스트 미국 시대에도 평화가 유지될 것인가?

이러한 시나리오를 환영하는 대부분의 논평가들은 미국의 지배력이 어떤 종류의 다극적 조화로 교체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다극적 시스템은 역사적으로 볼 때 특별히 안정적이지도 않았고 평화적이지도 않았다. 열강 사이의 대략적인 힘의 균등함은 불확실성의 근원이었고 이는 계산 착오를 낳았다. 미세한 권력 균등 속에서 불안정이 발생하면 갈등이 폭발한다.

열강들 사이의 전쟁은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장기간의 다극주의상태에서 흔한 일이었다. 엄청나게 파괴적인 일련의 전쟁들이 유럽 전역에 걸쳐 일어나면서 분쟁은 절정에 이르렀고, 이어 프랑스 혁명과 일어났고 1815년 나폴레옹의 패배로 종결되었다.

19세기는 대략 40여 년간 지속된 2개의 강대국 평화 기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 분쟁으로 종말을 맞이했다. 크림 전쟁 (1853년~1856년)은 백만의 러시아, 프랑스, 영국, 터키를 비롯 기타 9개국의 병력이 동원된 소규모 세계전이었다. 그로 인해 50만 명의 전사자와 그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프랑코-프러시아 전쟁으로 (1870년~1871년) 두 나라에서 거의 2백만에 달하는 군대가 배치되어 그 중 거의 50만 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러한 분쟁 후에 잇따른 평화는 갈등과 경쟁의 증가, 엄청난 전쟁 공포, 해상과 육지에서의 엄청난 병력 증가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클라이맥스는 세계 1차 대전으로, 이 전쟁은 인류가 이제까지 알게 된 그 어떤 분쟁보다 가장 파괴적이고 치명적 이었다. 정치학자인 로버트 W. 터커가 지적하듯이 “그러한 (힘의) 균형이 불러온 안정과 평온은 궁극적으로는 위협이나 폭력사용에 의존한 것이었다. 전쟁은 힘의 균형 유지에 꼭 필요한 수단으로 남아있다.”

[비디오 보기] (옆 을 클릭하면 대담하는 동영상이 나옴-영어)

21세기 다극주의(multipolarity)로의 회귀가 과거보다 더 큰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없다. 미국 지배주의 시대는 누가 우위에 있는가에 대한 확실성이 강대국 평화에 있어 최고의 해결책임을 보여주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퇴임시 다음에 대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미국의 주요 임무는 “미국이 더 이상 초강대국이 아닐 때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세계를 만드는 것,” 그리고 “미국이 무대를 함께 공유해야 할 때”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의 의견은 아주 분별력 있는 제안이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있는가? 특히나 안보라는 문제에 있어서 국제 질서의 규칙과 기관들은 그것들을 실제로 세운 나라의 쇠락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건물을 받치고 있는 비계와 같다. 비계가 빌딩을 받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그것들을 받치는 것이다.

많은 외교 전문가들은 현재 국제 질서를 과학과 기술 발전의 조합, 글로벌 경제의 확산, 국제 기관들의 강화, 국제적인 행동 규범의 진화, 다른 정부 형태에 점진적이나 불가피한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와 같은 인간 진보의 불가피한 산물로 보고 있다. 즉, 개별 인간과 국가의 조치를 초월하는 변화의 힘 말이다.

미국인들은 분명히 우리가 선호하는 질서가 옳고 정당하기에 (미국뿐 아니라 모두를 위해 옳고 정당한) 그것이 생존한다고 믿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승리가 보다 나은 아이디어의 승리이며 시장 자본주의의 승리는 더 나은 시스템의 승리이고 이 두 가지는 돌이킬 수 없다고 단정한다. 이것이 바로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에 대한 이론이 냉전 시대 말기에 그토록 매력적이었고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그 공신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그 호소력을 유지하는 이유이다. 불가피한 진화라는 아이디어는 적당한 질서를 부여하는 데 어떠한 요구사항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국제 질서는 진화가 아니다. 그것은 강요이다. 한 비전이 다른 모든 비전을 장악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그 비전이란 자유 시장과 민주주의 원칙의 지배와 더불어 그 둘을 지지하는 국제 시스템을 말한다. 현재 질서는 그것을 선호하는 사람들과 그것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자들이 그것을 방어할 의지와 능력을 유지하는 할 때만 지속될 것이다.

2차 대전 후 생성된 세계에 있어서 불가피한 것이란 없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성공에 필요한, 신성한 섭리 또는 어떤 헤겔파적 변증법도 없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성공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운 강대국 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란 보증도 없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자유주의 경제학은 번복되어왔고 번복될 수 있으며 몰락할 수 있다. 그리스의 고대 민주주의와 로마와 베니스의 공화정은 모두 보다 강력함 힘에 의해 혹은 자체적인 실패로 인해 몰락했다. 유럽의 자유주의 경제 질서도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붕괴되었다. 더 나은 아이디어가 그것이 더 나은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승리할 필요는 없다. 그러려면 그것을 옹호하는 강국들이 필요하다.

만약 그리고 실제 미국의 힘이 쇠락한다면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지지했던 기관과 표준 역시 쇠락할 것이다. 역사를 통해 지침을 얻는다면, 아마도 우리가 다른 세계 질서 혹은 무질서로 전환하면서 이러한 것들은 모두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그 때가 되면 미국이 현재 세계 질서 유지에 꼭 필요했으며 강대국 미국에 대한 대안은 평화와 조화가 아니라 혼란과 재앙, 바로 강대국 미국이 탄생하기 바로 전에 모습과 같은 것, 이라는 사실을 깨달을지 모른다.

- 글쓴이는 현재 브루킹즈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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