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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춘을 돌려다오!

BOY-SCOUTS & ARMY of 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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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Boyscouts of Whimoon Middle-school Member; 1958년 11월, 강화도 최전방

위문방문시의 사진.  뒷줄 좌로부터 한호원, 김유식선생님, 이아건, 해병중사,

신기홍, 앞줄 좌로부터 이수영, 신동일, 조규식(?) 등이 해병초소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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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당시 중학교 1학년 때, 신기홍 군과 이아건이 들고 있는 M1 소총이 힘겨워

보인다. 이 초소에서 건너다 보이는 북한 진영까지 1,700야드란다. 무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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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안 미소년 시절의  S.J. Lim & A.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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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시절의 건중이와 아건이 수락산 산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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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문고 2년 당시 사진반 시절, 손에는 아사히팬텍스 카메라를 들고 있는 A.K. Lee - 북한산 관음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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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대 건축과 친구들과 고양시 장흥 유원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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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친구들과 유원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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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시절 담배를 배워 한창시절 -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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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1966년 6월 9일에 논산훈련소에 입대하여, 공한기로 10일간 사역만 하다가

6월 20일에 군번을 받을때 찍은 훈병 이아건 얼굴 모습입네다. 짬빱 먹고 살이

좀 올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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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논산연무대 25연대 2중대2소대에서 6주훈련받고, 김해공병학교 건공반에서 8주

교육받았어요. 장간조립교, 부교, 목교, 그리고 畜舍도 짓고... 위의 그림은 조립식

목교 교육장에서 찍은 기념사진 임다. 

 

공병학교 8주때, 어무이(Stepmother)가 막내 이복동생과  백설기1말 해서 면회를

왔는데, 여자때문에 4번을 탈영했다는 면화장 10원짜리 군번 김일병이 백설기

내무반 반입을 책임져 준다는데... 3/4은 각 상황실에 통과세 물고 1/4만 도착.

그래도 20명 소대원에게 반 주먹씩 배분이 되었다

 

중대장 당번이라는 감투(?)는 나를 72kg짜리 비대한 이등병으로 둔갑시켰다.

연평도 알배기 굴비찌개-. 식사시간 1시간 전에 중대장 식사준비를 위해 취사

으로 직행한다. 그리고 누런 조기알과 하얀백반만 건져 중대장 식사를 챙겨주고

나면 나머지는 내 뱃속을 채우는 즐거움이 나를 8주간 비만으로 만들었고, 

면회장에서 나 말고 또다른 아들을 찾는 어무이를 연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 아들은 아직 안 나오는가요?"

얼마나 살이 붙었으면 어무이(Stepmother)가 나를 몰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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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그 유명한 103보충대에서 강릉행 동료들과 찍은 헬렐레 이등병들-.

우측에 잔뜩 폼잡고 섰는 싸나이가 이아건 이병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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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 춘천에서 횡성으로, 다시 원주를 거처 강릉 215건설공병대대에 도착했군요.

 대대 PX 앞에서 연락병 고참들과 기념사진. 이분들이 횡성 단본부에서부터

트럭으로 강릉행 야간열차로 5명을 인솔해 오느라 고생 많았던 분들입네다.

 

원주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강릉행 준급행을 탔는데... 앉을 자리가 없어서

승강구 철판위에 따블빽 옆에 쪼구려 앉은 모습이 측은했던지, 어느 젊잖은 

스님이 미루꾸(캬라멜) 1갑과 삶은 찰옥수수 1개씩을 나누어 주더이다. 

한 알씩 아껴 먹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장장 6시간만에 '산 좋고, 물 좋고, 미인이 많다'는 강릉에 도착하니...

이 또한 행인지 불행인지 꿈에 그리던 강릉 story의 서막이 來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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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강릉홍제동서 약 4km떨어진 2중대 소속으로 2개월간 2소대 작업병 신세다. 

대관령 중턱서 석축기초 굴토작업, 초막2교 부근서 60kg짜리 견치석 운반... 

제일 특과는 강릉 남대천에서 모래 상차작업이다. 4명이 1조가 되어 차 적재함

양측에서 모래 삽질하면 10분만에 2.5T Dump 1차 OKey다. 4대를 연거퍼 실어

대관령으로 올려보내면 오전 일과 끝이다. 내가 쫄병이니 식사당번은 내 차지다. 

 

모래작업장 인근은 사과 밭이고, 그 반대편엔 동네가 있었는데, 1종 바켓 2개를

들고 동네 우물가에 도착하니 '낭랑18세' 처녀 너댓명이 반기며 하는 말이...

"아저씨, 저 감나무집이 우리집이래요. 밥은 우리가 해 놓을테니 감나무에서

홍시 감이나 따 잡숫고 오세요" 원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ㅎㅎㅎ

 

한식경이 지나서 일행들과 감나무집으로 가보니, 식사준비가 완료되었는데...

아~ 글씨, 보리밥은 어데가고, 정량식기에 남산만한 쌀밥 봉우리가 가득한데,

밑에는 감자로 채우고 보리는 걷어내고 쌀을 보태고, 양미리 조림에, 구수한

김이 수북하고, 거기다가 총각김치에 껄쭉한 강릉 진땡이 한 주전자가...

그 바람에 4일간의 모래 운반조의 즐거운(?) 식사당번은 내 전매특허렸다.

 

위의 그림은 건설부 태백국 기술문관 4명중 1원으로 측량기사다.

1966년 11월 한 달간 강릉비행장 - 대관령 횡계, 국도(Root.#20) 25km를

함께 측량하면서 엄동설한에 동거동락하던 시절이 있었다. 솔방울로 항고

밥을 해서 나누어 먹고, 주막에서 여관에서 견적작업에 밤을 세우고 강릉

진땡이로 피로를 풀던 그런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이다.

 

폴대를 들고 대관령 중턱을 달리다 보면 여대생들이 전세버스로 지나다

사탕과 과자를 던져주기도 하고, 편지하라며 주소쪽지도 던저주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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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 당초 단본부 선임하사가 1통의 밀봉서찰을 주면서 강릉 건설공병대대에 

도착하는대로 S-3 선임하사에게 전하라는 나에 대한 메시지가 있었는데...

'삼국지' 좀 읽었다고 서찰을 전달 안한 것이 들통이나서 2개월 만에

대대 공사계 조수로 스카웃(?) 되는 영광을 얻은 것이다.

실은 대대 공사작전계인 서울공대 토목과 출신 이모 병장의 제대를 대비해서

조수를 교육시켜야 하는데, 내가 중대로 가는 바람에 교육기간 3개월

까먹고, 15일만내가 일약 공사작전계 사수로 감투를 쓰게 된 것이다.

사진은 작정과 동료들과 함께 계급이 같은 일등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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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지금의 강릉 홍제동 남대천변 대대 울타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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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 매년 5,6월이되면 대간첩작전으로 본부중대 요원들이 주야로 경계근무를 서야했다.

그린아 20개월 만에 병장 달고, 5분대기조 분대장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완전

무장이다. 소총은 카빈총 M2로 30발 탄창을 곶으면 연발사격 가능한 반자동식이다.

위 사진은 순찰 근무중, 지원부서 요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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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당시 총선거를 앞두고, 위문공연에 막걸리 파티에... 회식으로 찬짓날이다.

사진 뒤 죄측부터 수송관, S-3 보좌관, 본부중대장, 앞줄 좌측이 그린아병장,

가운데가 교육계, 우측이 정보계 보좌관은 육사출신 임 중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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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 이때 그린아거 이병장이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되어 공사계 조수를

거느린다. 그런대 조수는 그린아보다 2살이 위로 고려대 상과를 졸업한 재원이다

나는 건축쟁이지만... 군대는 교육. 이병장이 이친구를 골라 쓰기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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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제대 말년이라고 많이 건방진 모습의 이 병장이 조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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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1968년 11월초, 울진, 삼척 '무장공비120명 침투'로 12월 말 제대는 완전히

물건너가고, 무장공비 소탕이 끝날 무렵에 이병장은 군사령부 공병부 마스타

플랜반에서 2개월간 도면작업차 파견근무를 하게된다. 사진은 상황실 현황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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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 일일공사현황보고(8절 지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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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제대 말년에 대관령 초막2교 주막집에서 제설작업 대기 팀장으로. 중장비 운전병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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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대관령 정상에서-.  

1969년 3월 초 대폭설이 내렸다. 대관령을 넘을 차량들은 강릉시까지 밀려있고... 

아그들 먹여 살리겠다고 일종 따블빽 2개를 양 어깨에 걸러메고, 저녁 7시에 중대

막사가 있는 성산면 솔밭을 출발하여-, 교통이 끊긴 대관령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생달은 시커먼 구름사이를 오락가락 하는디... 초막1교 근처에서 1년 전에 어느

제대병장 사고자를 화장하던 장소를 지날 때에, 왜 그리도 소름이 돋고 발이 무거워

줄 담배로 화랑담배 반갑을 피웠다. 주막집에 도착한 것이 밤 11시가 넘었고...

그리곤 얼음이 반들거리는 댓돌을 오르다가 미끄러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뜨거운 방 아랫목에서 늘어지게 한잠 잘자고 일어나는데 아구통에서 불이 번적한다.

라이트 펀치와 함께 고막을 두드리는 대대장의 고함소리!

"이새끼가 제대 말년에 죽고싶어서 환장을 했나? 애들 한 두끼 굶어 죽을까봐 

미련하게 자고 오지않고, 한 밤중에 혼자서 눈길을 걸어오고 지랄...!" 

그 후, 대관령 정상은 양대 산 정상에서 쏟아져내린 얼음 눈덩이에 막혀 턴넬을

뚫어 차량을 통과 시키고, 폭약으로 발파를 하면서 제설작업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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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  제대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의 이 병장 그린아거. 

본부중대 피복계 신참 병장과 그레이더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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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제대하는 날은-, 낮 술에 진부를 출발하여 횡계, 대관령 주막을 거쳐

성산 중대, 강릉 홍제동 대대 연병장까지 계속 한잔 술이 이어지고... 

완존히 대취한 선임 이병장의 전역자 5명을 인솔하여 혀꼬부라진 

제대신고로 주월 비둘기부대, 십자성부대에 3사관학교1기 지원까지

파란많은 군생활의 종지부를 찍는다.

  

1966년 6월 9일에 논산 연무대에 건설공병으로 입대하여 만 36개월

만인 1969년 6월 8일에 드디어 전역을 하였으니...

김신조 일당과 울진, 삼척 무장공비 120명이 나의 군생활을

엉망으로 실감나게 장식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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