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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친구가 웃긴 애기라기에...
삼일 전부터 부랄 친구의 모친상으로 삼성의료원에서 삼일을 보냈습니다.
삼일 동안 세무사 하는 제 친구의 친구와 이런 저런 애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지요.

제 친구는 경신 야간을 나왔고, 그 친구도 같은 학교를 다녔던 지라
저는 꼴통 야간 고등학교 출신이 국세청 공무원으로 가게 된 과정이 
꽤 궁금해 있던 차에
그 친구가 '검정고시'를 봤다 하기에
나도 검정고시 출신이다 하며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애기하니까 그 친구가 뒤집어 지더군요?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경신 야간을 졸업하지는 않았고, 자퇴 후 검정고시를 봤다더군요?
아무런 이유없이 가출을 하고,
절에 들어가서 살다가 검정고시로 고졸 자격을 취득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했다더군요?

나의 "검정고시 에피소드"는 이러합니다.

휘문고등학교을 정문으로 들어 와서 후문으로 일찍 졸업한 나로써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심정으로 검정고시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목당 40점인 과락을 겨우 넘기고 평균 68점 수준으로 붙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제 일생의 단 한 번 벼락치는 몇 달간의 공부로 그 해 대학을 가게 되었지요?

대학교 1학년 4월이었습니다.
그 때는 신군부가 12. 12사태로 정권을 잡은 뒤라
각 대학에서는 데모가 가열차게 진행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데모하는 재미로 대학을 다니든 차에
미아리 친구들이 저를 학교로 찾아 왔습니다.

술 한잔 걸치는데
친구들이 자기들도 검정고시 접수를 했다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잘했다
대학에 오면 수준 높은 까이들을 꼬실 수 있다 하며 독려를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나도 같이 접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나 없이도 그와 같은 모사를 꾸몄는지
그게 가능한 지도 모르겠지만
그 친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일을 해 낼 친구들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나를 제일 앞으로 하고, 그 뒤에 연이어 두 명 접수를 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요즈음 처럼 수험번호를 건너 뛰거나 대각선 배치를 하거나 하지 않고
접수한 연번으로 그냥 시험을 봤습니다.

아무튼 친구들 학력신장 사업에 저는 기꺼이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사회생활 하려면 고졸 자격증은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의무감으로 검정고시를 한 번 더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80년 4월 말의 검정고시에서 
저는 답안지에는 오답을 쓰고, 문제지에는 정답을 쓰게 됩니다.
저는 한 과목이라도 붙으면 안되니까요?

그리고 저는 문제지를 친구와 바꿔치는 수법으로 작전을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다른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는 시선이 묘하더군요.
"시험을 잘 보았냐?, 문제가 어렵지 않았냐?" 하길래 이 치들이 뭔 소리를 하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교문에서도 어떤 사람은 잘 보았다고, 고맙다 라고 하더군요.
별 실없는 놈 다 있다 하고 잊어 버렸는데,
합격자 발표날 저는 안 갔지만 난리가 났다 하더군요.
"씨발 놈 때려 죽인다.
이 새끼 어디 갔냐?" 하면서

애기는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검정고시의 문항 번호는 1, 2, 3, 4나 가, 나, 다 , 라가 아닌
영어로, 그것도 대문자로 B, D, M, Z 이었습니다.

지금처럼 OMR 카드가 아닌 수기 채점을 하던 시절이니까
그 영어 문자가 구분하기 쉬워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랬습니다.

그리고 답안지는 지금의 A4용지 2/3만하다 보니
옆에서 슬쩍 보기만 해도 다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답안지에 객관식 문제 정답을 직접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한 과목이라도 붙으면 안되는 상황인지라
정답을 두꺼운 4HB 연필로 두번 그렸고요.
나는 당연히 답안지에는 과락 이하의 점수가 나오게 정답을 피해서만 썼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문이 났더랍니다.
S대 다니는 놈이 지금 대리시험을 보고 있고, 당연 그 S대생은 나라는 허무맹랑한 애기들이었지요.
그러니 사람들은 제 답안지를 곁눈질로 베끼고 그것을 그 옆 사람이 베끼고, 그게 돌고 돌아
그래서 그 반의 공부 수준 안되는 놈들은 죄다 제꺼로 도배를 한 모양입니다.

제 일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학습의 결과였는지
제 친구들은 아주 우수한 90점 수준으로 합격하고,
제 껄 컨닝한 주변 사람들은 죄다 떨어지게 된 것이지요.

제 친구들이 그 애기를 전할 때야
저는 비로소 화장실과 교문 밖 덕담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들은 제껄 따라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씨발 놈이 무슨 S대야 똘빡이구만 하고...

아무튼
그 친구들에게는 아직도 그 고졸 자격이 인생의 마지막 학력입니다.
그것이 그들 인생에 얼마나 도움됐을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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