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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작 30여분?

집 근처에 느지리 오름이라는 서울 화곡동의 우장산보다 조금 높은 야산이 있다.

오름은 제주 말로 기생화산이라고 하는데 집 근처에도 오름이 몇개 있지만

이곳 느지리 오름이라는 곳이 가장 가까운 곳이라 가끔 올라가곤 한다.

집에서 1km쯤 완만한 경사 언덕을 올라가면 주차장과 화장실이 나오고

그곳에서부터 느지리 오름이 시작되는데 콘크리트 포장을 한 산길이 무척 가파르다.


깔딱 깔딱 한 고개를 넘으면 갈랫길이 나오는데 한쪽은 목재 계단이 주로 놓인

가파른 길이고 한쪽은 미끄러지지말라고 타이어같은 고무를 잘게 잘라 이어 놓은 길이다.

봄에 올라갈 때는 말동인지 소똥인지 걸죽한 놈들이 군데군데 싸놓은 것을 보았는데

이번 길에는 그런대로 깨끗하다.


느릿한 걸음으로 30여분쯤 올라가면 산불 감시원이 근무하는 전망대가 있고

그곳이 느지리 오름의 정상이기도 하다.


사방 1.5m쯤되는 유리로 벽을 감싼 실내가 있고 그위로 전망대가 있는데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제주도 서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이다.


재수없으면 바람에 훌쩍 날아갈 만큼 거센 바람이 부는 곳이지만

그런대로 운이 좋았는지 모자만 바람에 날릴뻔하고 사진을 몇장 찍었다.


멀리 내가 사는 집도 보이고 제주시내일부쯤으로 보이는 동쪽 끝과

북쪽으로는 협재와 금능, 서쪽으로는 차귀도가, 남족으로는 산방산인지 송악산인지가 보인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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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거의 만병통치에 가까운 약효를 가졌다는 구찌뽕나무가 집근처에 자생한다는 걸 알고

약초 동호회에 가입을 했는데 워낙 까막눈이라 보여주고 들려줘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언뜻 매번 길만 따라가면 뭔 복이 있어 산삼이라도 보겠나싶은데...

마침 묘가 보이고 인적이 드믈 산길이 눈에 들어온다.


느지리 오름-

아무리 통크게 잡아도 반경 300m를 넘지 않을 작은 언덕이다.

까짖 가다가 못 가면 돌아오면 되겠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 길같지않은 길로 들어섰는데...

산이 깊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할 큰 산도 아니니 그저 길이 있건 없건 내리막으로 가면

되겠거니...했던게 실수다.


약간씩 거칠어지는 길을 도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자존심 상해서

눈을 들어 먼 곳을 보니 느지리 오름 초입의 콘크리트 도로가 보이는 듯하다.


아이쿠야!

콘크리트 포장길로 보았던 것은 나뭇잎이 바람에 뒤집히면서 햇빛에 반사되며

회색빛으로 착시가 된 것이다.

푹! 빠지고 아예 발 디디기도 겁이나는 가시덩쿨이며 쬐깐한 언덕답지않게 잡목이 우거졌다.


I-C!!

예로부터 군자는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 했거늘....

혹시 모를 그놈의 '심봤다!"가 내게도 걸릴까 로또보다 힘든 확률에 이리 들어서다니...

대낮이기는 하지만 점심때가 지난 터라 슬금슬금 허기가 몰려오고 길이 없으니 당황함에

갈증이 나고...아이고 미치겠다!!!


그래도 안심인 건 까짖 언덕 대충 어디쯤이고 무조건 내려가다보면 길이 나온다는 거다.

아! 차 소리가 들린다!

..잉?!

얼핏 얼핏 내려다 보이는 길이 제법 포장이 잘되어있고 중앙선이 그어진 걸 보니....

아! 여기는 절벽이다!

우쒸!! ...이리로는 끝까지 가봐야 내려갈 길이 없다.

5~6m쯤 되는 절벽을 기거나 뛰어내리는 수밖에....

여기서 지나가는 차에 대고 "살려주세요~" 하기엔 쪽 팔리고....

길과 만나는 오름의 경계를 따라 다시 길을 찾아 걷는다.


길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침이 마르고 저혈당이 오는 느낌이 든다.

그나마 내리막으로만 왔던 길을 다시 오르고 내리고를 하려니 길이 장난이 아니다.

조금 편한 길을 찾다보면 다시 헤메일까봐 가능한 직진으로 가다보니

뭔 놈의 가시덩쿨이며 썩은 나무가 발에, 다리에 감기며 발길을 막는다.


아무래도 한대 꼬슬리며 마음을 좀 가라앉혀야겠다....하는데

아! 이번에는 눈의 착시가 아니다!!

몇미터 앞쯤에 분명한 콘크리트 포장길이 보인다.

그 몇미터를 헤쳐나오는데도 꽤 고생을 하고 마지막에는 엉덩이를 땅에 붙히다시피

미끄럼을 타듯 내려오니...아이고 반갑다, 길아!!!


익은 길에 들어서서 시간을 보니 대충 30여분쯤 길없는 산길에서 헤멘거다.

그, 30여분-

길 아래로 짱돌을 던져 "살려주세요."를 할까,

아님 119로 전화를 해서 "도와주세요."를 할까 별의 별 생각을 다했었다.

집에 돌아와 몰골을 보니 바지며 잠바며 온통 풀씨들로 도배를 했다.


바지를 벗고 다리를 보니 여기저기 긁히고 찔린 자국이 선명하다.

당뇨때문인지 상처가 나면 오래가던데...


없는 길을 헤매던 30여분이 왜 그리 길고 끔찍했던지......


제주도민 세형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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