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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냥년 속고쟁이 가랭이꽃
 
순결다시 찾은 행복이라는 아름다운 꽃말을 지닌 은방울꽃은 늦은 봄이  지나고 이른 여름이
시작될 무렵  ()의 모양을 한 젖빛 꽃이 수줍은 듯 땅을 향해 아래로 핀다. 꽃의 모양이나 화려
하지 않은 색깔처럼 향기도 은은하다. 세상에 금방울꽃이라는 이름의 꽃이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들에게 더 친숙하고 함초롬히 이슬 먹음고  영롱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무래도 은방울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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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순결처럼 다소곳이 피어나는 은방울꽃을 옛날에는 화냥년속고쟁이가랑이라 불렀다고
한다. 화냥년이나 고쟁이나 가랭이나..모두가 예사스럽지 않은 별난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름답지
못한 단어들인데 누가 무엇 때문에 망측하게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런 민망스러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을까?
 
혹시 보리 고개를 못 넘어 항상 배고프던 시절, 봄이면 산나물을 뜯으러 힘들게 산으로 다니던
시절 무리 지어 지천으로 피어나는 잎이 먹을 수도 없어 쓸모가 없다 보니 괘씸한 마음에 그리
고약한 이름을 지어 불렀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도 은방울꽃이 피기 전 산마늘로 오인
하여 가끔 산나물 사고가 나기도 한다니 말이다.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으로 무려 60만 명의 남녀 백성이 청국에 끌려갔다. 그렇게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중에 아녀자들을 데려오려면 속환이라 하여 돈을 치러야 하는데 이렇게 돌아온 ´환향녀
(還鄕女)는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 라고 해서 온갖 능멸과 고초를 겪고
‘화냥년’으로 소리 나는 대로 불리어 졌는데, 그만 정절을 지키지 못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청국에 강제로 끌려갔던 많은 부녀자들 대부분은 더럽혀진 몸으로 고국에 돌아
오지 못하거나 돌아왔더라도 가문의 손상된 명예와 주변의 눈살 때문에 사람다운 대접 받으며 살지
못하고 다시 청국으로 되돌아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저주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전란 속에 태어난 한 많은 비극의 여인들이다.
 
이렇게 돌아온 여인들은 오랜만에 만난 부모 형제를 보고 통곡하기도 하였지만 누굴 원망할 수도 없는
처량하고 기구한 자신의 신세를 탓하며  야릇한 웃음을 띠기도 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을
믿기지 않는 사실을 두고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들이 그렇게 웃기도 하듯이옛 어른들은 여인이 싱겁게
웃으면, 뙤놈한테 업혀갔다 왔나라고 곧잘 나무랐다. 우리 옛 글 속에도 싱겁고 허튼 웃음을 '환녀
함소(還女含笑)'라 했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일 때문에 불쌍하게도 희생을 당한 여인들을 외면하고 냉대하고 배척했던
편협하고 너그럽지 못했던 당시의 사회도덕율을 말 없이 원망하며 가슴으로 그 한을 쌓아갔던 그녀
들은 동구 밖 정자나무에 목을 매거나 깊은 소()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더러는 만주 벌판으로
다시 돌아 환향녀끼리 어울려 살았다. 고국의 산천과 가족들을 한없이 그리며 또 원망하며....
 
나라가 힘이 없어 지켜주지 못한 이 기구한 운영의 여인들을 구제해야 마땅하다는 이경석(李景奭)
당시 많은 조정 대신들과 신료들의 반대 속에서도 이렇게 환향한 여인들이 낳은 자제들의 벼슬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인조 임금에게 주청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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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서울 홍제천 맑은 물에  3일 동안 몸을 깨끗이 씻고 오는 환향녀에 대해서는 지난날을 불문에
부치겠다는 영을 내리게 되자 환향녀들은 홍제천에 나가 흰 고쟁이를 드러내고  3일 밤낮 동안 몸을
씻었다. 그 모습은 마치 홍제천 언덕배기에 핀 이름 모를 꽃(은방울꽃)과 같았다고 하여 꽃의 이름을
화냥년속고쟁이가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속고쟁이는 여인네의 속옷인 한복에서 속곳 위 단속곳 밑에 입는 여자 속옷이다. 남자 바지와 비슷한
모양이나 밑이 터졌고 가랑이의 통이 넓다.
 
우리 옛 여인네들이 속에 입는 옷 중에 맨 안쪽 속살에 닿는 속옷이 여름에는 모시이고, 그 외 절기에
는 무명으로 입는 다리속곳이다. 그 위에 홑으로 만든 속속곳을 얇은 자미사로 만들어 오겹으로 입으
면 하늘거리는 자미사 안에 숨어 있는 여인의 속살 빛 유혹은 그날 밤 깊은 어둠 속에서 남정네의
길을 한데 모아서 불 꺼진 창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사랑으로 뜨겁게 뜨겁게 토해내게 만든다.
 
그리고 속바지, 단속곳 너른 바지, 여름에는 모시 중등이, 겨울에는 누비 속바지, 무지기 치마, 대슘
치마를 입는데 일곱 겹의 속옷을 갖춰 입는다.
 
아니 그러면 뒷간은 어떻게 가남?”
 
속옷 벗길 때 밤새워 벗겨도 다 못 벗겨 옷 벗기다 남정네 잠들겠네 그리 되면 사랑은 언제 하나 ?”
 
일곱겹의 속옷은 한 겹의 속옷처럼 가볍고 활동하기 편하며 한군데도 조임이 없이 살갗에 닿는 부분
까지도 상그럽게 해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일곱겹의 밑이 돌복의 풍차바지처럼 밑이 트여서
앉기만 하면 밑이 자연스럽게 벌어져서 해결되는 아주 과학적인 재단으로 만들어진 옷이라고 바느질
한 땀 한 땀에 담긴 애환을 바느질로 글을 쓴다는 어느 분이 블로그에서 얘기했다.
 
옛말에 고쟁이 열두 벌을 입어도 보일 것은 다 보인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 옛사람들의 지혜 즉 과학
이 숨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아무리 겹겹이 껴 입어도 볼일 다 보고 할 일 다 할 수 있도록 지어졌으
니 어찌 지혜롭다 하지 않으랴. 보여줘야 할 때는 치마만 걷으면 살짝 보여 줄 수도 있도록 만들어진
옷이라니...
속곳은 단()속곳과 속속곳을 모두 이르는데 단속곳은 속옷의 하나로 양 가랑이가 넓고 밑이 막혀
있으며 맨 속에 입는 것을 말한다. 흔히 속바지 위에 덧입고 그 위에 치마를 입는다. 여자들이 입던
아랫도리 속옷을 차례대로 살펴보면 맨 속에 단속곳을 입고 그 위에 고쟁이, 그 다음 속속곳 그리고
남자 바지 비슷한 다리속곳을 입고 맨 마지막에 치마를 입어 속옷을 감춘다. 
 
가랭이는 가랑이를 말하는데 바지 따위에서 다리가 들어가도록 된 부분이다.
 
천국 올라가는 계단처럼 조르르 열을 지어 피어 있는 은방울꽃을 보노라면 금방이라도 5월의 향긋
한 바람결에 맑은 종소리가 울릴 것 같은 예쁜 꽃인데 어쩌다가 ‘화냥년속고쟁이가랭이꽃’이란
망측한 이름이 붙은 것은 들꽃풍경 숲 기의호 원장에 의하면 봄에 이 꽃의 새싹이 땅을 헤집고 돋아
나는 모양을 보면 불그스름한 포막을 쓰고 나오고 그 후 싹이 점차 자라 이 포막이 찢어지면서 푸른
잎이 나오는데  이때의 모양이 속고쟁이의 가랭이와 같이 찢어졌다 하여 그러한 이름이 생기게 된
듯 하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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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인네의 섬세한 눈길에는 진록색의 잎 모양새가 어찌 보면 우리 고쟁이의 바짓가랭이 모양새
아주 흡사하기도 한 모양이다. 가운데 작은 종 모양으로 조롱조롱 맺혀 잇는 꽃을 보노라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름이지만 그 옆으로 무성히 하늘 향해 쳐들고 있는 진유록의 잎들은 마치
화냥년이 속고쟁이 입고 다리를 쳐든 모양이라고 치부될 만 하다.
 
어느 달 밝은 따스한 봄 밤이어도 좋겠다. 먼데 무논에서 들리는 개구리 울음 소리도 은근하게 깊어
가는 밤이다. 달빛이 꽃 창을 뚫고 들어와 만상萬象이 숨을 죽이고 있는 방 한가운데로 꽃 창살 그림
자를 펼쳐놓는다. 이 때 오붓하고 은근한 사랑의 시간을 향하여 여인이 속고쟁이만 입고 누워서 두
다리가 달의 정령精靈이라도 보듬을 양으로 달을 향해 벌리고 있는 형상을 상상케 해준다.
 
깊은 밤 은근한 사랑의 오붓한 시간을 사그락 대며 여인이 일곱 겹이든 열두 벌이든  아랫도리를
감쌌던 옷을 벗는 소리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소리일 것이다.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조선 선조 시절.
우연히 어느 관리의 환송 잔치에 참석한 정철과 유성룡, 이항복, 심희수 그리고 이정구 등 학문과
직위가 쟁쟁한 다섯 대신들이 한창 잔을 돌리면서 흥을 돋우다가 들려오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시제를 가지고 시 한 구절씩 읊어 흥을 돋우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자 정철이 먼저 운을 뗐다.
 
淸宵朗月 樓頭遏雲聲  청소낭월  누두알운성 ………………鄭澈
맑은 밤 밝은 달 빛이 누각 머리를 비추는데, 달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의 소리 
 
滿山紅樹 風前遠岫聲  만산홍수  풍전원수성 ……………….沈喜壽
온 산 가득 찬 붉은 단풍에, 먼 산 동굴 앞을 스쳐서 불어 가는 바람 소리
 
曉窓睡餘  小槽酒滴聲  효창수여  소조주적성 ………………柳成龍
새벽 창 잠결에 들리는, 작은 통에 아내가 술을 거르는 그 즐거운 소리
 
山間草堂 才子詠詩聲   산간초당  재자영시성 ………………李廷龜
산골 마을 초당에서 도련님의 시 읊는 소리
 
洞房良宵 佳人解裙聲   동방양소  가인해군성 ………………李恒福
깊숙한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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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저녁 그 자리에 모인 모두는 오성대감의 여인이 치마 벗는 소리가 제일 압권이라고 입을
모우고 칭찬했다.  당대에 내노라 하는 대 학자요 문장가요 정사를 좌지우지할만한 정치가였지만
그들이 아무리 유학의 궤범에 얽매여 살아간다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 치열하게 다가가서는
일개  장삼이사(張三李四)나 무엇이 다를 것인가? 
 
여기서 굳이 부인이라고 하지 않은 걸 보면 당시에는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 받는 오늘날의 탤런트
나 영화배우 같은 미인을 텔레비전이나 화면을 통해서 접할 수 없었던 시절이니 어찌 보면 황진이
같은 미모와 서정과 기예를 갖춘 여인을 두고 아름다운 여인 이라고 지칭하고 있다고 봐야 하리라.
고쟁이를 열두 벌 입어도 보일 것은 다 보인다라는 옛 말대로 한번 품에 안아 본 여인의  모든 것을
설사 다 알고 있다 할지라도 남자의 귀에는 이항복이 말한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된 그 여인이
밤의 어둠 속에서 한 꺼풀씩 옷을 벗어가는 모습을 사그락대는 소리로 듣는 그 정취(情趣)는 언제나
한 없이 설레이는 꿈으로 반갑기만 하다. 음란스럽기 보다는 얼마나 그윽한 정감과 함부로 흉내내기
어려운 멋으로 다가오는가? 
예부터 ‘사내란 계집 앞에서는 나이를 타지 않는다’ 라는 속담도 잊지 않는가?

이 저녁 그 자리에 함께한 근엄한 양반님들도 등불이 꺼진 방안에서 여인이  한 겹 엷은 속적삼의
옷깃을 풀어헤치는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보고 별을 따야지’ 하는 생각에 절로 가슴이 더워지고
있었으리라. ‘음양에는 원래 천벌이 없는 법이다’ 라는 사회통념이 지배하였기에 첩을 두기도 하고
기생과의 하룻밤 풋사랑도 마지 않았는데 오늘 저녁 그 여인이 누가 됐든 상관이 없는 좋은 시대(?)
를 살고 있는 사오십 대의 호남아 양반님들이 호젓한 밤의 심연을 같이 유영(遊泳)하면서 가마솥
처럼 끓는 밤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고 있었으리라.

이들의 풍류와 해학과 멋 ! 
정말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남기에 족하다. 우리는 어찌해야 저들의 그림자라도 좇아 가랴.
 
     이런 고약한 이름하곤...
    화냥년 속고쟁이 가랭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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