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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평도 공격 예측한 韓哲鏞(64) 예비역 육군 소장

 연평도 공격 예측한 韓哲鏞(64) 예비역 육군 소장

 

   

“2012년에 북한 서울 때릴 것”한철용 전 5679정보 부대장
 

북한은 또 한 차례의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상은 서해5도, 아니면 수도 서울을 직접 공격할 가능성이

큽니다. 시기는 한·미 양국의 대선이 겹치는 해(年)이자,

북한이 김일성 출생 100년을 맞아 강성대국을 선포하는

2012년이 될 것입니다.”

 

이미지

지난 4월 나온 저서 ‘진실은 하나’에서  “북한이 연평도 등 서해

5도를 직접 공격할 것”이라 예측했던 한철용 예비역 육군소장은 
12월 14일 주간조선과 만나 이같이 말하면서 역설적이지만 그럴

경우, 북한 정권에 심리적 공황을 가할 수 있는 장소를 폭격,

김정일의 전투 의지 자체를 꺾을 수 있어야만 전면전을 막을 수 있다

고 했다.  
    
 "북한 정권에 심리적 공황을 일으킬 만한 장소가 어디냐”는

질문에,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이라고 답했다.  
그는 “주민 300만명을 굶어 죽게 만든 김정일 정권이 민간인 희생을

두려워하겠느냐”며 “북한 정권의 심리적 공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주체 사상의 발원지이자 북한의 신전(神殿)인 금수산 기념궁전을

초토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소장은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국군 5679정보부대를 이끌었던  
대북정보실무의 총지휘관 육군사관학교(26기) 졸업 후 백마부대  
소대장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정보본부 소련 주무장교,

한미연합사 정보참모부 정보운영실장, 육군본부 정보처장, 육군

보병제8사단장, 국군5679부대장 등 정보계통에서 평생을 보낸 대표적

정보통이다. 
    
한 소장은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그해

6월 13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의 암호 전문을 해독해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남쪽을 공격하려 한다는사실을 파악해

상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그가 보고한 사실은 당시 군수뇌부에 의해 묵살되고 말았다.  
그는 제2연평해전 이후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군수뇌부가 5679부대의 정보를 묵살했다고 증언, 파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그는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뒤 전역했다.  
한 소장은 2005년 국방장관을 상대로  
징계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 승소해 명예를 회복했다. 
   
 
 “평양 방어 미그기가 NLL로 이동”


  지난 4월 ‘북한이 연평도 등 서해5도를 직접 공격할 것’이라

  미리 예측했다. 어떻게 가능했나.  

     이미지

 

 여섯 가지 징후가 있었다.  

우선, 국정원이 북한 정보를 수집해 서해5도 공격

계획이 있다는 것을 지난 8월 파악했다.

 

둘째, 연평도 피폭 당일이던 11월 23일 ‘사격훈련을 실시할

경우 폭격하겠다’는  북한군의 경고 메시지가 있었다. 

 
셋째, 북한 해안포 동굴 포문이 당일 개방됐다는   사실을

정보 당국이 파악했다. 

 
넷째, 북한 개머리 기지의 122㎜ 방사포 부대가  
해안으로 이동한 사실을 포착했다.  


다섯째, 김정일이 김명국 작전국장을 대동해 황해도를 방문,

현지 지도를 했다는 사실을 11월 22일 북한중앙통신이 발표했다. 

 
여섯째, 연평도 포격 직전, 미그23기 다섯 대가 NLL 인근에서

초계 비행을 실시했다. 미그23기와 미그29기는 평양 북창 비행장에  
70대가량 배치된 최신예 전투기다.  
평양 방어, 다시 말해 김정일을 지키는 것을  주 임무로 삼고 있다.  
그런 전투기가 평양서 멀리 떨어진 NLL 
인근까지 접근한 것은 특이

동향이라고 판단했어야 한다.2002년 제2연평해전 직전에도 미그23기  
2대가 NLL 초계비행을 했다. 

 
천안함 사건 직전에도 미그29기로 추정되는 전투기가 한밤중에 NLL까지

내려온 것이 포착됐었다. 북한은 우리 공군의 대응에 대비하기 위해,  
도발 직전 항상 최신예 미그기를 내려보낸다.  
보통 두 대가 초계비행을 하는데 이번엔 다섯 대나 내려왔다.

연평도 육상 포격은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  
5대나 보낸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안이하게 대응한 것이다.”
   
   - 북한의 추가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보나.
   
   “그렇다.” 
   "그렇다면 어디를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고 보나."
   “서해5도는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눈의 가시요, 목의 비수다.

   그래서 1999년 제1연평해전부터 지속적으로 NLL과 서해5도의

  무력화를 꾀했다. 따라서 백령·연평도 등 서해5도를 목표로 삼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살펴보자. 대한민국을 단

  한번에 공황에 빠뜨릴 만한 곳은 어디일까.  

 
단 한 발로 대한민국 경제를 무너뜨리고 사회를 마비시킬 만한 곳이 어디일까.  
바로 서울이다. 1994년 판문점 특사교환 실무접촉 때 북측 대표로 나왔던 박영수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해서 회담을 결렬시켰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서울 폭격은 전면전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북한이 서울을 공격하는 것이  바로 그때다.

‘대한민국이 전면전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판단이 설 때,

김정일은 서울을 공격할 것이다.  
‘전면전이 두려우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처럼 6·15 선언을

이행하고, 퍼주기식 교류를 하라’는 것이  북한의 얘기다.

북한이 서울을 쏘면  우리도 평양을 쏠 것인가.  
아니면 북한 장사정포 부대를 폭격하는 선에서 멈출 것인가.

우리가 장사정포 부대를 공격하는 선에서 멈출 것이라고

판단하면 북한은 서울을 공격할 것이다.” 
   
   - 시기는 언제라고 보나. 

   
   “한·미 양국의 대선이 겹치는 해이자  
    김일성 출생 100년이 되는 해, 그리고 

북한이 강성대국을 선포하는 해인 2012년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황상태로

만들어 대선에 개입하려 할 것이다.”
   
   - 일부에선 6·15 선언을 이행해야

     평화가 온다고 말한다.
   
   “6·15 선언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안이 포함돼 있다.  
이는 대화하면서 적화를 추구하는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이다.  
통일전선전술은 원래 항일(抗日)전술이다.  ‘항일’이란 대의

명분에 힘을 합치자고 장제스 군대와 공산당이 합의한,

이른바 국공합작의  통일전선전술이다.  
그래서 원래 명칭이 항일통일전선전술이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한국판 국공합작을 의미한다.”
   
   - 만약 북한이 서울을 폭격한다면우리가 취할 만한 대책은 뭔가. 


   “북한이 서울을 폭격하고 그래서 우리가 평양을 때렸다고 치자.  
그러면 북한도 과연 우리처럼 공황상태에 빠질까. 그렇지 않다.

김정일 정권은 주민 300만명을 굶어죽게 했다. 그런 정권이 민간인

희생을  두려워하겠나.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표적을

찾아야 한다김정일과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북한 정권을

심리적 공황에 빠뜨릴 수 있는 곳,   그곳을 찾아야 한다.”
   
 - 어떤 곳이 그런 곳인가. 

   
   “김일성과 김정일은 주요 고비 때마다 묘향산 특각(별장)을 찾았다.  
제2연평해전 때도 김정일은 묘향산 별장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994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회담을 준비하던   김일성도 묘향산

특각에 있었다.  김정일은 도발할 때면 항상 지하 벙커에 들어갔다.  
북한엔 지하 땅굴지휘소가 열 곳가량 있는데 전시에 김정일이 들어갈

만한 곳은  다섯 곳 정도로 압축된다. 

 
최근 탈북자 중 일부가 지하로 들어가는 갱도 입구를 알고 있다.  
이곳에 GBU57(지하 100m까지 뚫고 들어가는 초강력 폭탄)을 쏘면,  
북한 전쟁지휘부를 제거할 수 있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북한 전쟁

지휘부는 1주일 안에 제거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주지시켜야 한다.”
   
   - 묘향산 특각을 공격해야 한다는 말인가.
   
   “북한에 심리적 공황을 일으킬 만한 장소가 어디일까.  
    북한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이다.  
이곳은 북한의 신전이며 주체사상의 발원지다. 

 
이곳이 초토화되면 북한 정권의 심리적 공황은 말할 수

없이 커진다. 게다가 주변에 민가도 없어 주민 희생도 적다.

금수산 기념궁전은 문화재도 아니다. 이걸 초토화했다 해서

국제 여론이 나빠지지도 않는다. 

  
 
    
   “北 함정 1척이 도발했는데 사격중단 명령”
  
   -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때도  
     북한의 도발을 예측했다.
   
   “그해 6월 13일에 북한의 암호 전문을 입수했다.  
14자를 해독했는데 그중 ‘포격’이란 말이 들어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사용된 표현은 ‘포격’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 표현을 정확히 인용하면  
정보를 주고 받은 당사자가 드러나기 때문에  
인용할 수가 없다.   이해해 달라.

 

6월 27일에도 전문 15자를 잡았다.그런데 이번엔 ‘포격’이란

표현이 2회나 들어 있었다.미군의 경우 사격, 포격, 급습, 공격

이런 표현이 나타나면 5분 안에 국방부에 보고되고, 즉시 비상

상황에 돌입한다.우리는 이를 ‘의도된 침범’이라고 보고즉시

보고했다. 하지만 당시 국방부는이 정보를 묵살, 예하부대에

관련정보를 하달하지 않았다.”
   
   - 왜 하달하지 않았다고 보나.
   
   “햇볕정책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는 월드컵 기간이었다.  
당시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제2연평해전은

우발적 사건’이라고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다음날인

6월 30일 예정대로  금강산 관광선을 취항시켰다. 

 
해전 이튿날인 이날 국방부 수뇌부는  해외로 출장을

떠났다가 언론 보도가 나가자 부랴부랴 다시 돌아오는

소동을 빚었다. 우리 해군병사들 영결식엔 대통령도 합참

의장도 국방장관도 참석하지 않았다.”
   
   - 국감에서 ‘국방부가 정보를 묵살했다’고  
      증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연평해전으로 여론이 안 좋아지자 국방부는

‘정보 제공이 미미했다’며 핑계를 댔다.

 

그리고 책임을 물어 5679부대장인 내게 징계

처벌을 결정했다. 정보를 묵살한 것이 누구인가.

 

경고를 받느니 차라리 전역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국감에서 오라고 했다.

 

국감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다. 이로 인해 다음날

보직 해임됐고 결국 전역했다.

 

당시 정보 보고를 받은 경로는 국방부 정보과장→

정보융합처장→정보본부장→국방부장관이었다.  
 

 그런데 이후 정보본부장은

 

제2연평해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외국 대사로

영전됐고 다른 사람들은 준장→소장, 대령→

준장 또는 외국 대사로 영전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기습공격으로 도발한

북한 함정은 한 척뿐이었다.

 

한 척으로 우리 해군 고속정 4척과 초계함 2척을

대적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이 도발하면 반드시 우리 해군 초계함의 격파

사격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한 척으로 무모한 도발을 자행했다.  
  
이는 우리 해군 초계함의 격파사격이 없을 것이란

전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공교롭게도 우리 초계함은 50여발을 발사한

격파사격을 중지했다. ‘사격을 중지하라’는

상급부대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방부는 ‘사망자 5명을 사상자 5명으로

잘못 알아들어서 피해가 경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군에서는 최초

보고를 할 때 반드시 사망 몇 명, 부상 몇 명이

라고 구분해서 보고하게 돼 있다. 지휘관은

사망자 수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사상자 몇 명’

이란 보고를 받으면 즉시 사망자는 몇 명인지

다시 확인한다.

당시 국방부 해명은 상식을 무시한 것이다.”
  
   - 이번 연평도 포격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을 평가한다면.
   
   “대응사격이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먼저 공격을 당한 쪽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기 때문에, 

맞대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 해병대원들은 북한 포탄이 쏟아져

불바다가 된 상황에서 K9 자주포를 발사해 대응했다.

제2연평해전 때도 그랬다.

 

손가락이 날아간 해군 장병은 팔꿈치로

탄창을 갈아끼우며 대응사격을 했고,

쏟아지는 포격 속에서도 부상당한 전우를 챙겼다.

일선 장병들의 전투 능력과 용기는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상부에 앉아있는 별자리들이다.

‘강장(强將) 밑에 약졸(弱卒) 없다’고 했는데,

강졸(强卒) 위에 약장(弱將)이 있어서 되겠나.

이번 연평도 포격 때 대통령이 대응책을 물으니,

합참에서 ‘확전될 경우 주민 피해가 우려된다’고

답했다 한다.

 

그런데 확전으로 인한 전면전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북한은 걸프전, 아프간전 등을 통해

드러난 미군의 위력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내부적으로도 전면전을 일으킬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북한 내부의 역량, 남한 내부의 동조세력, 

국제적 공조능력 등, 자기들이 말하는

‘3대 역량’이 모두 미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평도 같은 국지전은 일으킬 수 있다.

 

      이미지

 

우리 공군 F-15K에는 SLAM-ER라는 사거리

280㎞의 정밀 공대지 미사일이 장착돼 있다.

 

이게 보령 앞바다 쯤에 떠서 북한 해안포대 좌표를 찍고

미사일을 쏘면 된다. 굳이 NLL 인근까지 날아가서 타격할

필요가 없다. 북한 미그기는 우리 전투기를 볼 수도 없기

때문에 공중전이 이뤄질 수 없다.

 

해군 장병들의 대응 사격은 성공작이지만,  

군 상부의 작전 지휘는 실패작이다.”   
 
 
 

북한의 전쟁 수행능력

 

이미지   

 

 

최근 믿을만한 소식통으로 들은 이야기는, 김정일에게 수시로 들락

날락 할 수 있는 정도의 고위 장교(三星장군)가 한국에 망명해 왔다.
그의 증언의 일부가 바로 다음의 글이다 아래에 실린 어리석고

불상한 사람들아 ! 잘 들어 두라!

김정일은 "제2의 한국 전쟁" 을 일으키지 못한다,
현재 인민군에서 강력한 부대로 인정 받고 있는 12개의 게릴라여단,

장거리포 부대 거기에 쿠바의 核미사일 기지 등에 한정되여 있으며 ,
인민군의 약점은 주로 4가지 입니다.


1 , 체중 저하

김일성시대에는 인민군의 군인 평균 체중 목표 62.5Kg을 국가차원에서 유지해

왔습니다,그러던것이 95년부터 식량사정이 악화되여 김정일시대 실시한 98년의

全軍體重 조사에서는 평균체중은 뜻밖에도 43.5Kg이 였습니다.

98년에는 영양실조로 一時歸鄕 11만명, 완전제대27, 000 명, 부대 내에서 요양

하는 군인이 20만명에 이르렀습니다.  96년 부터 2002년 까지의 7년간에 영양

실조로 인해 완전제대한 군인은 15만명에나 이릅니다.
이는 군 임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당연 합니다 원래 군인에게는 백미를

지급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는 모두 강냉이로 정착되어 있습니다.


그것이라도 3食 공급이 되면 다행인 편인데, 하루에 강냉이 한개일 때도 있습니다.
예외로는 김정일 직속의 특전부대인 게릴라12개 여단, 공군 2개 사단, 핵무기 담당

4개 특수부대 입니다, 특전부대만은 " 3끼분의 쌀을 공급하라 "는 김정일의 명령이

내려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는 해외식량원조米에 의존하게 된 95년 이후, 원조미의 배급은 軍우선 조치가

취해졌습니다,그러나 정확히 말한다면 , 원조미는 주로 전쟁 비축미로서 창고에 비축

되는 것입니다, 軍이 김정일에게 제출한 금년 1월 10일 현재 최신 데이터에 의하면
2003년 한 해 동안에 필요로 하는 전쟁비축미는 764, 500톤인데 이에 대하여 현재의

확보량은 527, 800톤(69%) 입니다, 북한에 식량 원조를 하면 , 그만큼 전쟁의 위기가

높아진다는 이치 입니다,

2 , 둘째의 약점은 사상의 악화 입니다,
김일성시대의 북한은 물질적 부족을 메우고도 남을 강인한 정신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95 년부터 식난이 심각해 짐으로써 軍의 사기가 현저히 저하 되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 자유주의 "라는 은어(隱語)가 군대 내부에서 유행하였는데 그것은

군인이 민간인 집에 강도로 침입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전국의 軍주둔지에서 국민관계가 악화되어 있습니다, 김정일이 어느

부대를 시찰할 때에는 그 부대의 지휘관이 창고의 비축미를 병사들에게 마음껏

대접하여 그 날만 감싸준다는 것이 습관화되여 있습니다, ,
이러한 상태인데 이제는 장군에서 부터 一兵에 이르기 까지 김정일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軍은 거의 없습니다. 자기의 직무만을 수행하면 그 다음은 내가 알 바

아니라는 것입니다,전투에서 승리하기 보다 하루라도 빨리 제대하고 싶다는 것이

군인들의 속 마음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김정일 자신도 살펴 알고 있습니다

3 , 북한군의 3번째 약점은  연료, 즉 기름이 절때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북한군이 보유하고 있는 비상 연료 보유양은 " 戰鬪定量 " 뿐입니다,
전투정량이란 開戰日부터 1주일분의 보유량인 것입니다,즉 장기전 따위는

처음 부터 불가능한 것입니다.  97년부터는 연료 부족 때문에 중장비를

가동할 수 없게 되였고 대부대의 기동훈련을 중지하고 있습니다,

또 西海岸에 연한 부대에서는 포사격에서 실탄사격을 할 수 없는 상태

입니다,  연료油 소비량이 큰 空軍의 비상훈련도 연간계획의 10%까지

떨어지고 비행사의 전투능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2001년 정월 전 부대에 대하여 " 전시용 연료를 1개월분 확보하라 "

고 명령 했습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은 군무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해외로 나

가서 '달러벌이 " 에 매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연료유외의 수입을

표면상 금함으로서 점점 뇌물이 만연하게 되였습니다, 동시에 군 간부들

간에는 연료유 강도라던가 밀매가 횡행하여 혼란이 극심해지는 편입니다,
현재는 최 중요 거점인 평양시에서 조차 3개소의 지하연료유 창고의 합계

보유량은 80년대말에 비교하여 4할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24시간 가동이 의무화 되여 있는 전국 63개소의 군수공장 중 38개소가

연료유 부족 때문에 현재 완전히 스톱 되여 있습니다,

4 , 네번째 약점은?
통신지휘망이 극히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
현재 북한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 무선통신기기의 대부분은 구 소련제로서

내용기한이 벌써 지난것들 뿐입니다, 또 구 중장거리 단파 무선기는 장애파로

인한 통신마비가 빈발하고 교신거리도 아주 짧기 때문에 대부분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통신기재도 성능이 열악하여 낡은 통신선이 약간 있을뿐이기 때문에 " 전시에 유선통신은

기대할 수 없는 일 "이라는 통달이 전군에 나와 있을 정도 입니다,
이에 더하여 충정기의 성능도 극히 열악하기 때문에 통신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일이

번번히 일어 납니다, 이에 북한군에서는 전시에 통신기기를 통하여 전투명령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대비해서 다음 3종류의 방법을 통달하고 있습니다,


1 , 전령이 문서나 구두로 전한다
2 , 봉화를 올려서 신호한다,
3 , 이미 정해진 전투명령서에 따라 주체적으로 전투행동을 일으킨다,


결국은 반세기 전의 조선전쟁 당시와 전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통신기기외도 지하에 보관되여 있는 전시용 화학물질이나 의약품은 변질이라든가

열화 (劣化)가 심하여 다수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며 "보유화학무기 5000톤 " 이라도

대부분 내용기한(耐用期限)이 끝나서 실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타 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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