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교우회게시판 - 자유게시판

휘문교우회 로고
천재시인 휘문 선배님 -- 정지용 선생님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생으로 한약재상을 하던 부친의 장남으로 태어나 당시 풍습으로 12살에 결혼을 했습니다(그의 \'향수\' 시를 보면 그 아내를....) 가난하였지만 워낙 똑똑해 후원자들이 그를 서울로 유학을 보내   휘문의숙(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게했습니다 (문학을 하려면 휘문을 가야만 했던 우리 모교..자랑스럽지요? 휘문을 말하지 않고는 한국문학을 논할수 없음) 학교 생활을 하던중 1919년 3.1 만세운동에 연루되어 쬐끔 남은 휘문을 졸업하지 못하고 (설이 많음-졸업했다는 설도 있고..확실치 않음.. 그러나 그리 중요하지 않음 다음을 읽으면) 감옥생활을 6개월정도 하고 나와 더 큰 뜻을 품고 후원자들의 후원에 힘입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하고 돌아와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교의 선생님중 한분인것입니다 8·15 해방후 《경향신문》 편집국장,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여기서 국문학 영시를 강의하고 서울대에도 강의를 나간거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문학가동맹을 가까이 했으나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단체에서 활동이 좀......). 정부 수립 후 전향하여 보도연맹에 가입했으나 6·25 때 납북된 것으로 보입니다. (납북으로 보는 시각과 월북으로 보는 시각 두개가 공존하는데... 당시 이데올로기적 사고로... 나머지는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세요...지금 관점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에 이미 박팔양(朴八陽) 등과 동인지 《요람》을 발간했으며,..(대단하지요? 고교시절에 벌써...) 대학시절에는 전위적인 모더니즘의 실험성을 보여주는 《카페 프랑스》를 발표, 시단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어 신선한 감각의 《바다》 《향수》 등을 발표했으며 1930년대 《시문학》 동인으로 《이른 봄 아침》 《선취(船醉)》 《피리》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밑바탕에 무욕(無慾)의 철학이 깔린 그의 시는 대부분 사물시(physical poetry)로서 감각적 이미지와 토착어의 활용, 지성에 의한 감정의 절제 등이 돋보입니다. 30년대 전후에 현대시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한 그의 시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현대시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이때까지 월북작가라는 점때문에 국가보안법에 묶여 빛을 보지 못했으나 이제 시대가 바꿔져 가곡 \"향수\"가 이동원 박인수에 의해 히트 하고 환한 세상을 만나며 꽃피우게 됬고 정지용선배에 대한 연구가 활발이 진행되고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한편 《가톨릭청년》의 편집 고문을 맡아 이상(李箱)의 시들을 발표하게 하였으며 청록파시인들을 추천, 등단시키는 등 후배시인들의 육성에도 힘썼습니다. (3월 휘산회 때 김영랑 선배 생가를 들리고 오면서 김원석 선배님이 버스 안에서 청록파와 정지용 선배와의 관계등을 즐겁게 설명했었죠?) 시집에 《정지용시집(1935)》 《백록담(1941)》, 산문집으로는 《지용문학독본(1948)》 《산문(1949)》이 있습니다. 저의 딱 50년 선배쯤되십니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발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어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원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