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춘추 칼럼
🧑 최영철
📅 2004-03-31
👀 427
음악춘추 2004년 4월호 칼럼
\"유능한 지휘자 설 곳이 없다.\"
최영철(카메라타서울 음악감독겸 상임지휘자, KBS미디어 콘서바토리 교수, 한국첼로학회장)
지금까지 음악계 현장에서 실내악단, 교향악단, 교직, 교향악단의 창단, 지휘자, 음악감독 생활 등 각종 현장음악계의 문을 드나들면서 나름대로 음악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몸과 마음으로 수없이 느껴 왔다.
비단 음악계의 문제라기보다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음악계 특히 교향악단의 세계는 매우 치열하고 냉혹하다.
여기서 지휘자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그 고유 영역 또한 점점 좁아져 가고 있다.
지휘를 전공으로 선택하고 수많은 세월을 공부하고 연마하는데 소비하고, 정작 사회로 나오니 문은 좁고 설 곳은 없는 게 음악계의 현실이다.
이는 또 무대에서 마음껏 발휘되어야 할 음악적 역량이 다른 많은 이유로 인해 꺾어지고,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 이르는 계기까지 되기도 한다.
유능한 지휘자의 정의가 차차 바뀌어가고, 사회가 요구하는 잣대에 의해 유능도가 판단되어 지며 이는 다른 여러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가장 개성적이며 창의적이라야 할 예술 분야에서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발생되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휘자의 창작 의욕과 음악적 해석은 빛이 바래게 되는 것이다.
음악적 양심보다 우선 자기 목의 보전이 더 중요한데 무슨 예술 운운이냐?
이는 교향악단에서 지휘자에 관한 문제가 튀어나오면 언제나 붙는 단골 메뉴이다.
그런 때에 그래도 음악적 양심을 가진 지휘자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든지 아니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기도 한다. 대신 그 자리는 보다 사회적인 인사가 차지하게 된다.
자연적으로 음악적인 소양보다 사회적인 소양의 소유자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은 운영자의 입장에서도 잘 파악하고 있는 관계로 이번에는 외국의 저명 지휘자를 물색하게 된다. 결국에는 누구의 자리도 아닌 제 3국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음악적인 지휘자든 사회적인 지휘자든 간에 국내 지휘자는 사장되어진다.
이런 결과가 지휘 분야는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계속 이어지면 결국 한국 음악계는 몰락하게 되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실상 음악계나 다른 문화 분야,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걸쳐 이런 현상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를 보완하거나 국내 음악계를 살릴 방도는 없는 것일까?
첫째, 우선 허리띠를 잡아매고 몸통을 줄여야 하겠다.
현장 음악계의 실상을 잘 파악하여야 하겠다. 음악인들의 특성상 현 사회에 대한 세밀한 인지가 부족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자기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옛날에는 희소성의 법칙에 의해 소수의 지휘자가 활동한 관계로 어떤 자리든 보장이 되었고 어느 단체이든 지휘자를 모셔가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이에 따라 차차 지휘학도의 범람으로 인해 배출되는 지휘자가 많아졌고 현재도 무수한 지휘학도가 지휘봉을 놓고 밤낮으로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이 많은 지휘학도가 좁은 현장 음악계로 배출되었을 때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둘째, 지휘자의 능력 판단 기준이 바로 서야 하겠다.
지금같이 사회적 잣대가 우선되어지는 풍토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음악적 분석과 창작에 쉬지 않고 몰두해야 하는 지휘자의 일상이 음악적인 상황과는 정반대의 사회적인 분야에 쏠리게 된다면 이는 매우 불필요한 소모가 될 것이다. 행정은 행정직이 하고, 접대나 사교 분야는 또 다른 직이 하여 음악적인 독립 체제가 필요하다.
지금같이 지휘자가 온갖 행정 일과 로비까지 해야 한다면 더 나은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현장 음악계는 물론이고 관 행정의 말단직에까지 눈치를 보아야 하는 지휘자가 무슨 음악적인 재량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이런 일들을 무수히 보아 왔다.
지휘자가 행정과 기획 문건까지 챙겨서 보고해야 하고 그 보고의 승낙 여부를 기다려야 하면 그 사이 가장 중요한 연주에 관한 지휘자의 역할은 물 건너 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연주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사이에 음악적 역량에 반한 사회적 역량이 뛰어난 지휘자가 한 몫을 하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셋째, 교향악단 내부의 문제가 중요하다.
교향악단에서 단원과 지휘자의 관계는 언제나 터지기 직전의 풍선 관계가 되어질 수밖에 없다. 음악적인 견해 차이는 차치하고라도 선후배 관계내지는 인사에 관한 보이지 않는 대립 관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치열한 냉전이 벌어지게 된다. 이 또한 지휘자의 음악적 소양을 마음껏 발휘 못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인간관계에 치중하게 되면 음악이 흐트러지게 되며, 단원의 발전에도 악영향이 가게 되고 이는 직접적으로 연주에 반영되게 된다. 또한 음악적인 부분에 치중하면 반드시 불화를 이기지 못하고 지휘자가 그 자리를 떠나야 하는 불상사가 일게 된다. 이는 지휘자의 문제만이 아니고 결국은 교향악단의 존립 차제가 위험해지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도 심적으로는 비관적으로 기우는 것을 억제하지 못한다.
이 모든 문제를 지휘자의 총체적 역량이라고 판단한다면 간단할 것이다만 실제로 그런 완벽한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바삐 이런 문제를 해결할 현대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면 뭘 하겠는가? 음악인 스스로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데...
결국 우리 모두가 반성하고 공생의 길로 나아가야 이런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어질 것이다.
우리 모두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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