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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우리 세대를 거울로 비춰보면 영화 \"바보들의 행진\" 이 정답일거야. 대학을 졸업하고 군 입대 후 훈련을 마치고, 원주에서 야간 삼등 완행열차를 타고 피서객들과 뒤섞여서 밤새 강릉으로 가면서 온갖 추억이 떠올랐었다. 똑 같은 길을 고2 때 한껏 부풀어서 문건영 등과 함께 경포대로 놀러가던 생각. 지금 기억으로도 그 때가 가장 재미있었지. 그 후 대학 시절을 지내면서 이장희의 \"한 잔의 추억\" 송창식의 \"고래사냥\" 산울림의 \"나 어떡해\" 등을 애창하며 동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대구 군의학교를 나오고 동경사로 발령받은 후 첫 생각이 내가 원하던 곳으로 가는구나.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우리 용어로 고래 잡는 건 포경수술이다.) 속초에서 간발의 차로 유수현을 만나지 못하고 나는 간성으로 간다. 피서객으로 들끓던 한여름의 화진포 등을 뒤로 두고 건봉사를 거쳐 까치봉으로 올라가면서 속세를 완전히 떠나는 느낌이었지. 산하에서는 그렇게 덥던 날씨가 계속 올라가면서 걷었던 소매를 내려야 했다. 바람이 하도 세서 지프가 날아간다는 독도에서, 무전기를 등에 멘 새까맣게 탄 임근수를 만났다. \"어떻게 된거야? 어디 있어?\" \"까치봉으로 간다. 의무지대로 와라\" 얻어 탄 복사 트럭이 \'붕\' 떠나면서 말도 몇 마디 못하고 헤어졌지.(이후 임은 유명을 달리한다.) 사령부 비서실에서 유수현이 전화로, 위재준이 내가 있는 대대의 GP장으로 갔다고 알려준다.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통화를 했었지. 이후 1년간의 전방생활은 평생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추억이 되었다. (1년 후에 속초 사령부로 갔고 백운학의 고향인 주문진은 물론, 윤석길의 고향인 삼척까지 다람쥐 팥바구니 드나들 듯 돌아다니면서 동해의 사계를 골고루 맛본다.) \"나뭇군과 선녀의 삼일포, 해금강의 바위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멀리 뵈는 금강산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 수평선과 함께 그림같이 펼쳐진 동해 바다, 고진동 계곡의 김일성 고기\" 그 해 10월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평화롭던 영내가 전시태세로 바뀌는 걸 보게 된다. 후방에서 올라오는 탄약 실은 트럭들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완전군장한 보병들이 실탄과 수류탄을 몸에 감고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드디어 전쟁 발발인가 보다. 우리 지역은 포기 지역이라고 들었는데, 이젠 죽었구나.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난생 처음으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전우애와 애국심을 느꼈다. 그 옛날 재미있게 보던 영화 \"전투\" 에서 이리 저리 바삐 뛰며 구급낭 메고 활약하는 위생병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이제 해보는 거야. 그 후 가끔씩 생각하던게 GP 근무하던 전우들이다. 커다란 자물통 달린 이중문으로 들어가던 GP는 들어가면 다시 못 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전쟁 발발시에는 전원이 전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위재준 소대장, 나, 임근수 등이 그 해 겨울을 잦은 비상 속에서 그렇게 보냈다. 이제 하나 둘,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인생의 고달픈 광야 길을 거치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앞에 두고. 우리도 인생을 마감하는 날,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되뇌게 된다면 회한이 없으리라. \"전쟁터 같은 인생의 치열한 싸움판에서 살아 남았노라. 그리고 최선을 다했노라\" 군가가 왜 그렇게 슬플까? 어릴 적 생각이었는데,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건 이제 겨우 철이 들려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사라져간 전우야 잘 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주는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