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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 (미국 연주여행기)
이 연주여행기는 제가 미국 L.A.에서 있었던 현대음악제에 참가하여 첼로 독주를 하고, 나머지 일정은 L.A.의 동기들을 만나본 후, 뉴욕으로 건너 가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진출한 동기 송승환의 “난타”의 개관 기념 공연 관람 후기, 또 워싱턴의 동기들을 만난 감회를 적은 여행기입니다. 2월 12일 분당에서 공항버스 정류장을 돌아나가는 아내의 차가 시야에 커다랗게 들어오는 건 이번이 나홀로 여행인 탓일게다. 하늘은 매우 맑으나 약간 차다. 뉴욕과 워싱턴의 날씨를 생각해 트렌치 코트의 깃을 세우고 셀룰러폰의 로밍서비스를 마치니 시간이 약간 남는다. 동기 김연수가 나와 같은 시간에 인천공항을 떠난다고 했는데... 같은 날 오후 1시 30분쯤 예정보다 일찍 L.A. 국제공항에 도착하다. 게류장의 이름모를 노란 야생화들이 첨단 시설의 국제공항과 야릇한 조화를 이룬다. 하늘은 맑고 트렌치 코트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날씨가 따스하다. 예상보다 간단히 입국절차를 마치고 브래들리 터미널 앞에서 기다리는데 학창시절 밴드부 주장이던 백성현이 두리번거리는게 눈에 띈다. 몇십년 만의 반가운 포옹을 하고 잊혀졌던 옛날 얘기로 꽃을 피우며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동기 이종규한테서 전화가 온다. 저녁 때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 종규가 열심히 준비하는가보다. 반갑기도 하지만 한쪽으로는 미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생활이 매우 바쁠텐데... 이번 현대음악제의 작곡자인 카톨릭대의 선배 교수를 잠깐 만나고 악보를 건네받은 후 곧 동기들이 기다리고 있는 가마골로 향한다. 부푼 기대와 함께.. 얼마나 모였을까? 들어가자 64회 대륙백화점 하시는 길옥배 선배님께서 먼저 인사를 건네신다. 옆에는 L.A. 동문회의 총무인 77회 김동관 후배가 앉아 있었고... 앉은 자리를 기준으로 L.A. 67회 동기회장인 이종호, 김준수, 황병호, 최영두, 이성원, 총무 이종규, 박점진, 임우성, 최영철, 백성현, 김호영, 최희석, 고창범, 조성기, 조용수, 늦게 온 유만영, 용수네 집으로 찾아온 목사 안문영. 왕년의 히식스의 멤버이자 가마골 주인장이신 56회 한웅 선배까지... 몇 차례의 건배와 함께 우리는 오랜만의 반가운 만남에 학창시절 얘기들로 화기애애한 가운데 차차 거나해진다. 덧붙여 종호와 종규의 거친 입담은 “아저씨들의 저녁식사”에 없어서는 안될 맛난 양념이 되었지.. 계속 폭소가 터지는 가운데도 지치지 않고 쏟아내는 동기들의 양기오른 입은 휘문 출신이라면 누구든 잘 알 것이다. 2차로 조용수의 넓은 집의 별채로 자리를 옮긴다. 우선 용수가 먼저 가라오케를 틀고 한 곡조를 뽑는데 종규는 페치카에 장작을 넣고 양주와 맥주를 꺼내온다. 용수네 집 별채에는 별의 별 엔터테인먼트가 즐비하다. 학창시절 싸움꾼이던 안문영 목사가 이 날의 반가운 해후에 축사를 대신하고 아쉬운 악수를 교환하며 성현이네 집으로 향했다. 성현이가 정성껏 준비한 게스트룸에 여장을 풀고 침대에 누워 얼마 전부터 내 속에 흐르고 있던 정체모를 서글픔이 무엇인지, 고요한 전원마을 창밖으로 어슴프레 비치는 풍경을 보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친구들이 이국 땅에서 저만큼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남모르는 풍상을 겪었을까? 가슴이 아려오네... 2월 13일 오전에 선배 교수가 내가 묵고 있는 성현네 집을 방문했다. 당초 계획은 L.A.의 후배 첼로를 빌려 연주하려 했는데 성현네 둘째 딸이 첼로를 하고 있어 성현네 첼로로 연주하기로 했다. 현대음악이라 굳이 내 악기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매우 좋다. 비행기 티켓을 또 끊어야 하거든... 선배 교수와 연주에 관한 약속을 하며 연습을 끝낸 후 오후에는 맨하탄 비치 근처의 인쇄소를 들렀다. 간 김에 해변가를 잠깐 거닐고... 노인들의 산보가 매우 한가로워 보인다. 오는 길에 호프 유니버시티의 유일한 한국인 조성환 교수를 방문하고 학위 교류에 관한 약간의 의견 교환이 있은 후 성현이가 예약해 놓은 만선이란 횟집을 찾았다. 성현이네 차는 세 대가 국산이고 큰 밴이 하나 있다. 몇 년 전 “한한한 운동”을 제창하다 자기 얘기를 들은 친구가 국산 차를 산 것을 보고 부끄러워 혼났다고 하며 자세히 설명한다. 한집에 한대씩 한국 차를 사자는 운동이란다. 먼 이국 땅에서도 이유불문하고 고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성현이가 달리 보인다. 2월 14일 연주 연습은 대충 마무리 되어서 성현이의 거래처이자 63회 선배이신 이철희 선배의 큰 규모의 회사에 잠깐 들러서 기념촬영을 하고 성현이네 부부와 라구나 비치를 찾았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저 나가잔다. 항구에 널린 요트들을 보며 한동안 거닐고, 넓게 펼쳐진 태평양 바다 내음을 폐부 속 깊이 마신다. 작은 동산 언덕 위에서 마침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젊은 여대생으로 보이는 연주자 둘이 바이올린과 첼로가 열심히 켜고 있는데 날씨가 약간은 차서 연주가 어려울 것 같았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다. 옛날 대학시절 온갖 결혼식 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하던 추억이 떠올랐다. 오후에 연주회장인 호프 유니버시티 오디토리움 홀에 도착하여 맨 처음으로 리허설을 했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7시가 지나 연주회가 시작되었으나 이 지역 특유의 만성 교통정체로 인해 늦게야 도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대음악제의 관람객이 대체로 적은 데 반해 이 날 연주회는 관람객이 많았다. 이 지역의 몇몇 일간지에 보도가 되고 포스터도 여기저기 부착했다고 하니 홍보가 잘된 탓인가? 최근 현대음악 작곡의 기조를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연주회 후 성현네 식구와 그 친구 부인과 딸, UCLA 출신 후배 첼리스트까지 함께 중국집으로 뒤풀이를 갔다. 이후 성현네 집까지 옮겨가서 각종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는데 결국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새이 굳바이를 할 수 있었지. 후후후... 2월 15일 미국에 와서는 음악활동에 관한 일로 다른 특별한 플랜을 갖지 못했었는데 이번 여행은 성격이 좀 달라 오늘은 산타 모니카 비치로 향할 수 있었다. 바다에 관해서는 달통할 것 같다. 먼저 게티 센터를 찾아 미술품을 감상했다. 장대한 스케일과 언덕 위에 자리한 미술관의 아름다운 조망이 매우 인상깊었다. 저녁에 설렁탕 집에서 한국에서와는 달리 광우병하고 상관없이 식사를 하고 성현네 큰딸이 모는 차를 타고 들어갔다. 성현네 큰딸을 매우 똑똑하다. 지금은 샌디에이고의 대학에서 학비 등 일체 모든 걸 자기가 해결한다고 한다. 2월 16일 아침에 뉴욕의 69회 강영진 교수한테 전화하고 또 동기이자 화가인 공덕로한테 전화하다. 연주회의 선배 교수와 성현이, 후배 첼리스트, 넷이서 레돈도 비치로 가 크랩을 깨뜨리기로 했다. 영덕게보다 맛이 없다고 하자 한국인 종업원이 별의 별 농담을 건네는데 같은 한국인의 정이 그리웠었나 보다. 후배 첼리스트는 오랜만의 옛 추억에 지친 듯 보였다. 작곡가 선배가 농담 반 위로 반 추스르려는 노력을 하나 몇십년 전의 학창시절로 돌아간 시공을 건너뛴 대화가 도리어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된다. 추억은 추억을 낳고,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상처를 덧낼 수도 있지... 인기 드라마 천국의 계단 “아베마리아” 음률이 입안을 맴돈다. 저녁에 종규의 잇단 전화에 용수네 집을 뉴욕으로 가기 전 날 마지막으로 들렀다. 뜻밖에 서울에서 박종훈이 와서 용수와 대작하고 있었다. 반갑게 악수들을 하고 우리도 곧 대작에 참여한다. 예의 용수의 가라오케가 발동하고 있었고 “서울 탱고”의 구슬픈 가락이 울려나온다. 곧 이어 종규네 식구도 들이닥치고 노래방은 불꽃이 튀기 시작한다. 용수네 처까지 합세하여 “새드무비” 옛 팝송을 부르는데 용수가 그 노래에 얽힌 얘기를 귀엣말로 해주는데 갑자기 가슴이 울컥한다. 그 사이 사이 종규는 바베큐에서 갓 구어낸 맛난 향의 고기를 연신 입에까지 대준다. 종훈이가 서울의 유희진 대령한테 전화를 하더니 나를 바꾸어주어 서로 인사를 건네고 서울에서 보자고 약조했다. 종훈이는 이제 이 곳으로 이민 올 계획이라고 한다. 자칭 코브라 스피킹으로 통하는 종규의 재미있는 입담과 브라질에서의 여담을 들으며 설운도의 “삼바 삼바 삼바”가 만들어진 동기를 알 수 있었다. 코브라의 얘기로는 자기가 아랫 것들을 시켰다고 했지... 성현이가 아는 화가한테 빌려주었던 대형 밴을 인도받는 관계로 성현이 차를 내가 몰며 국제면허증 가지고 온 한턱을 했다. 2월 17일 성현이가 롱비치 공항까지 배웅해주었다. 짧은 기간이었으나 옛 밴드부 동기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떠나는 내가 아쉬움이 가득했다. 언젠가는 갚을 날이 있겠지... 뉴욕 JFK공항으로 가는 국내선을 탔는데 흑인 담당 직원이 다른 쪽 통로로 안내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심한 취체가 이루어진다. 마치 범죄자 취급하듯 아주 환대를 받고 비행기를 타러 가는데 입맛이 씁쓸하다. 흑인과 인디언 계통의 직원만 보이고 왜 백인은 보이지 않는거야? 고단수 행정의 일면이 잠깐 보이는 듯했다. JFK공항에 내려 69회 강영진 후배한테 전화하고 옐로우 캡을 타고 뉴저지로 향한다. 영어가 서툰 흑인 택시 운전자 덕에 흥정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강 교수 차로 1시간 반 거리의 휴양지 포코노 산장을 향해 강 교수의 둘째 아들과 함께 그 밤으로 들어갔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산 중턱,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강 교수와 지하실의 엔터테인먼트룸에서 옛 이야기를 하며 가라오케의 음율에 몸을 맡겼다. 2월 18일 아침에 산장 주위를 산보하며 맑은 공기와 함께 눈속을 걸었다. 이제까지 미국 일정이 비가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