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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무렵, 거슬러 여름, 그리고 봄, 2009 시작, 詩作

(詩) 가을 무렵, 거슬러 여름, 그리고 봄, 2009 시작, 詩作

 

詩人 신 성 수(71회)

 

1.

가을 무렵

 

참 궁금하였다.

봄여름 한 신명 늘어놓은

목련이며 매화는 가을 석 달은 무엇을 하고 지낼까

한잠이 들었는지 손으로 흔들어 보아도 별 반응이 없어

발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우우 녀석들 머리 위에서 바람이 쏴아 내리고

갑자기 햇살 한 발이 투욱 떨어지는 것이었다.

우우 하는 소리와 함께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녀석들이 서로 눈망울을 천천히 크게 굴리면서 뭐지 뭐지 하면서 긴 기지개를 켜면서 목을 길게 쭈욱 빼고 살피는 것이었다.

나는 후유 하면서 녀석들 등 뒤에 몸을 바짝 기대고 녀석들이 고개를 돌리면 따라서 양팔을 힘주어 기대고 내가 없는 척 발끝만 소리 죽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녀석들이 서로 안심하라고 하면서 다시 하품 한 두 번 하더니 고개 한 번 젖혀 보고는 다시 바람은 어깨에 메고 햇살은 머리에 이고 잠이 빠져 들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제야 녀석들에게서 빠져 나와 내 그림자며 녀석들이 떨어뜨린 바람이며 햇살을 주섬주섬 챙기고 뒤돌아서기 시작하였다.

좀 무겁다 생각하면서 으흠 하다가 숨을 들이쉬면서 멈추었는데 그만 녀석들 중 한 녀석이 알아챘는지 잠에서 깼는지 아니면 잠꼬대인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희 사람이라는 것들은. 사람이라는 것들은. 사람이라는 것들은. 너희들은

......

 

나는 녀석들이 무섭다. 욕심 같아서는 모두 휘이 베어 내버리고, 목이 가는 코스모스나 심어 이 가을 내 눈 아래 발아래 두고 싶은데... 욕심이다. 그저 혼자 생각이다. 녀석들이 알면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달아날 수 있을까.

 

2.

거슬러 여름

 

천 원이었다. 천 원이면 매일 가쁜 숨 몰아쉬면서 병실을 찾은 어머니께 따뜻한 밥 한 그릇 마주할 수 있었는데, 나이 쉰이나 되어서 어머니 몰라라 하고 보란 듯이 반찬 투정하면서 금세 혼자 밥 한 그릇 물리고 장하다는 듯이 드러누워서 어머니께서 드시는 두유 소리만 엿듣고 있었다. 그러다 알 수 없이 머리가 아팠다. 차츰 목이 아프고 가슴이 너무 막혀 오는 것이었다. 울컥 목을 타고 넘어오는 것이 있었다.

 

새벽

소화가 안 된다는 아내를 생각하며 더듬거리면서 밥을 끓이기 시작하였다. 밥물이 끓고, 밥알이 떠오르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순간 밥알과 반대로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는 마음

 

깁스를 하고 나서부터 나는 컴퓨터 자판의 SHIFT가 싫어졌다.

 

그렇다. 나는 왼손잡이이고 왼손을 다쳤고, 멋대로 움직이다가 링거 줄이 빠져 가엾게도 뚝뚝 피가 떨어질 때나 겨우 어머니하였다.

 

아내도 왼손잡이였다. 머언 스무 해 전 집들이 날 함께 왼손으로 손님상을 차리다 수줍게 바라보며 웃던 그 집 부엌. 병실에서 바라본 아내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데 나는 두 손을 모두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적당하게 둘러 댄 핑계가 shift였다.

 

창 밖 멀리로 북한산이다. 손이 자유롭지 못해서 가지 못해도 다행인 여름 어느 날

 

어머니

그리고 아내.

 

3.

그리고 봄, 2009 시작, 詩作

 

다시 목련에게

‘목련, 낮은 곳으로 오다.’라고?

가소로운 것. 어서 무릎 꿇지 못해?

미안, 미안 나는 너가 이해해 줄 줄 알았어.

둘러 댈 핑계가 없어서 나는 연신 손을 부비며 적당한 대답만 떠올리고 있었다.

그럴 수가 있어? 보라고 보란 밀이야.

너가 갈기갈기 찢어 낸 내 살점들을 보란 말이야.

야윈 내 속살들을 보란 말이다. 이젠 바람과 맞서고 햇살도 적당히 견뎌내기는 다 틀린 노릇이란 말이다.

다 너가 그런 것이다. 이 말이야

어째 그렇게 잔인할 수 있느냐 말이다.

인간이라는 것들. 부디 그저 내버려 두란 말이다. 실컷 눈요기가 하란 말이다.

억지로 나를 움직이지 말란 말이다.

 

정말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 것은 나였다.

녀석을 드러내고 나서야 그걸 알았다.

 

사람은 더디 깨닫고 나서도 왜 앞세우기만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