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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밸얘 6 - 세 번의 기회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며 내내 궁금했다.  밝은 조명이 비치는 큰 무대의 맨 뒤쪽 뚝 떨어진 구석 평범한 접개 의자에 앉아서 처음부터 줄곧 코털 하나 펄럭이지 않고 꼼짝하지 않는 백발의 백인 노인, 그는 과연 무엇 때문에 빈 손으로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거기 좌초되어 있을까?  나 같으면 지루하고 심심해서 팍팍 졸았을 텐데 그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이 무척이나 심각하게 보였다.  물론 80여명의 다른 단원들처럼 검은 연미복에 검은 구두를 신기는 했지만, 오케스트라 음악에 대한 문외한인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심포니 실리콘 밸리의 마지막 연주가 거의 끝날 무렵 드디어 그 궁금증이 자동으로 해결되었다.  어느 순간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서너 발치 앞 근처에 감춰진 것처럼 놓였던 정말 커다란 놋쇠 솥뚜껑 두 개를 조심스럽게 집어들고 때가 되니 아주 멋지게 콰강깡해댔다.  그는 그 뒤 금방금방 정확하게 두 번 더 일어났다.  그리곤 다시 그 의자에 좌초되었다.  마지막 부분에 있었던 딱 세 번의 짧은 연주 기회를 위해서 그는 그리도 심각하게 기다렸나 보다.  분명히 온갖 악기들이 함께 어우러진 클라이맥스였지만, 그 노인의 순간 행동 감격에 젖은 내 귀에는 신기하게도 그 노인이 강렬하게 생산해 내는 강약장단고하 심벌즈 진동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듣기 좋았다.  그는 드디어 해냈다.  불현듯 찾아온 단 세 번의 기회를 무심코 만났지만 그는 결코 그걸 모두 놓치지 않았다.  세 번의 기회를 적시에 골라 잡아야 한다는 우리네 인생 살이와 너무나도 흡사함을 눈으로 귀로 그리고 가슴으로 찡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가까스로 좀 떨어진 시내 길가에 저녁 6시가 넘었으므로 무료로 주차를 하고 안늦기 위해서 아내와 함께 총총 뛰어온 보람이 있었다.   우리 내외는 정확하게 저녁 7시 58분 산호세 예술의 전당(San Jose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문을 들어선 직후, Will Call 창구에서 가까운 지인에 의하여 미리 예약구매되어 있던 심포니 실리콘 밸리 데뷰 초연 좌석표 두 장을 급하게 받아 들고 곧장 3,000 석 규모의 깔끔한 초현대식 공연장 2층 발코니에 자리를 잡았다.  앉자 마자 단 1초도 안틀리는 8시 정각 공연 인삿말이 시작되었다.  내 손목 시계를 쳐다 보며 순간 나도 모르게 약간 소름이 끼쳤다.  역시 거의 모든 면이 정확하게 돌아가는 전형적인 실리콘 밸리 행사였다.  우리 이후에 아무도 문 열고 들어온 이가 없었으므로, 우리 내외가 분명히 지각을 면했는 데도 불구하고 결국 대략 2,400 여명의 관객 중 아마도 제일 꽁찌로 입장했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 나는 더욱 놀랐다.  그 오만가지 각양각색 다양한 많은 사람들 중 지각생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대체적으로 정장을 했지만 개중에는 편한 캐주얼 차림을 한 관객도 있었고 아이들도 꽤 있었는데 공연 내내 모두 철저하게 찍소리 안내고 조용했기 때문에 우리 내외도 오랫만에 정통 클래씩을 살갗을 포함한 온 몸으로 음미할 수 있었다.  중간 쉬는 시간에 팔팔해 보이는 흑인 안내(Usher, 어쎠) 아저씨와 잠깐 대화했는데,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안 순간 갑자기 ‘안녕하십니까’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반색한다.  한국전 때 낙하산으로 투하되는 등 25년간 군 생활을 마친 후 맡은 이 지역에서의 교편 생활에서도 은퇴를 한 후 요즘에는 1년이면 약 4개월씩 이렇게 Part Time으로 근무하는데 좋아하는 골프비도 벌지만 좋아하는 각종 공연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므로 일석이조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그 당시 당신처럼 한국을 피와 땀으로 말없이 도운 군인이 있었길래 오늘날 나같은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하면서, 개인적으로 손을 잡으며 감사의 표시를 하자 무척이나 황송해 한다.  85세의 나이답지 않게 젊고 건강해 보인다고 솔직하게 얘기해 주자 더욱 몸 둘 바를 몰라 해 한다.  참으로 순박하다.  그리고 고맙다.  하도 흐뭇해서 나중에 차로 걸으며 내 아내에게도 미주알고주알 몽창 다 얘기해 줬다.  내가 엊저녁 그 곳에서 본 단 2 명의 흑인 중 한 명이었다.  실리콘 밸리에는 이처럼 흑인이 거의 없다.   빤히 내려다 보이는 80여명의 단원 중 두 명의 젊은 한국인 여자 바이올린 주자를 포함한 대여섯 명의 젊은 동양인을 제외하곤 모두 백인이었으며 적어도 그들의 3분의 2 정도는 백발이 성성하거나 대머리인 노인이었다.  내게는 클래씩이 원래 무척이나 지루하다.  그런 나를 잘 아는 내 아내는 입장 전 내게 졸지 말라고 미리 언질을 주었다.  그런데 그런 다소 지루한 와중에서 나는 문득 글자 그대로 홍일점을 발견하고는 내심 자그만 흥분감이 일었다.  오려던 잠이 화들짝 깨었다.  바쁘고 절도있게 딱딱 끊기며 움직이는 그 수많은 하얀 활 즉 보우(Bow)들 중 유독 남들과 달리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한 젊은 여자 바이올린 주자의 것은 확연히 톡톡 튀는 붉은 홍색이었다.  그녀는 분명히 달랐다.  개성이 살아있는 반골이었다.  철저한 예외였다.  그러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과연 누군지 다소 궁금하기도 했다.  그간 내가 경험해온 미국 민주주의는 거의 완벽한 수준의 각종 법에 의하여 정확한 시계처럼 찰칵찰칵 오차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조직력이 그 바탕에 있었다.  악법은 발견되는 대로 체계적으로 보고되고, 부지런하고 대부분이 전문 변호사 출신인 각급 상하원 의원들과 그들의 유능한 법률 전문 보좌관들에 의하여 즉시즉시 합리적인 법으로 둔갑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순둥이 시민들은 커다란 불평 없이 누가 특별히 시키지 않아도 철저하게 준법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어디에든 항상, 개개인의 특수한 상황과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따뜻하게 수용되는 예외가 존재한다.  예외를 존중하고 수용할 줄 아는 전체의 아량, 이것이 미국의 매력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콱콱 숨막히는 벽창호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많은 시민들이 서로 짱구 굴리며 얍삽하게 나두나두 하며 각종 예외 조항을 남용 악용 또는 오용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바보들은 결코 아니다.  확실히 대범하다.  대체적으로 기본 그릇이 크다.  그리고 사회 각 지도자 층으로 올라갈 수록 꼼꼼(Meticulous)한 성품이 대접을 받는다.  꼼꼼하다는 것은 여기서는 한국과 달리 다소 엄청난 미덕이다.  일반적으로 무지몽매한 대중을 올바른 한 쪽으로 잘 몰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도 장치가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어야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도 별 무리없이 잘 따를 수 있는데, 그러한 기본 장치는 빈틈 없이 꼼꼼하고 현명한 지도자의 몫이다.  미국판 타임이나 뉴스위크를 보면 누가 지도자인지 그리고 그들의 수준이 어떤지 대번에 나타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부시는 아니다.  물론 나중에 역사가 절로 증명하겠지만, 엉성한 부시는 모든 걸 제멋대로 다 망친다.   사실 엊저녁 공연에는 이곳 실리콘 밸리 특유의 우여곡절 사연과 나름대로의 의미심장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30여 년전 아주 튼실하게 건축되어 지금까지도 거의 새 건물과 마찬가지로 초현대적으로 산뜻하게 유지되어 오고 화재와 같은 재앙이 없는 한 앞으로도 한 100년 넘게 아무런 손색없이 충분히 사용될 수 있을 아주 미적으로 특이하게 지어진 산호세 예술의 전당과 그 긴 역사를 같이 해오며, 30여 년전 초창기에는 그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무보수로 임했던, 그간 날로 꽤나 크게 번성했던 샌호세 심포니가 무자비한 9-11의 여파와 닷캄 붐의 몰락으로 인한 기라성같은 수많은 실리콘 밸리 후원 기업체들의 몸사림으로 말미암아 고질적인 적자 운영을 견디다 못한 끝에 더 이상의 은행 융자길 마저 막히고 단원들의 오래 밀린 봉급마저 해결 못하는 참담한 신세로 전락한 끝에 작년 말 드디어 파산 신청과 함께 힘없이 무대에서 사라진 후, 그 한 맺힌 골수 실업자 잔당 단원들이 새마음 새재정 새단체 새두목 새의지로 똘똘 뭉쳐서 올여름 개발새발 심포니 실리콘 밸리(Symphony Silicon Valley)라는 단체를 새로이 만들어 아직 이곳 기업체들의 별다른 후원 없이 기십불 내지는 기백불 내지는 기천불씩 기증한 기백명의 뜻있는 개인 후원자들을 우선 등에 업고 1인당 약 50불씩 다 합쳐 봐야 얼마 안되는 공연 입장료를 바탕으로 다시 시작하는 그 대망의 첫 공연이었다.  그 기백명의 개인 후원자 이름들을 알파벳순으로 모두 야질이 끝에 실어서 공식적으로 감사의 표시를 할 정도로 아주 자상스럽고 품위 넘치고 깐깐하고 오자나 탈자 하나 없이 깔끔하게 인쇄된 엊저녁 프로그램 팸플렛에 의하면, 앞으로 1년간 내년 여름까지 엊저녁과 같은 공연이 모두 다섯 번 더 기획되어 있는데, 그때그때 연주곡이 모두 다르다.  그들에겐 똑같은 곡으로 두번 공연이란 없다.  어제 공연도 엊저녁 단 한번으로 끝이다.  그들 나름대로의 막다른 골목 비장함 속에서도 예술가로서의 고고한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쓰는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