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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우는 가을 밤 이야기
귀뚜라미 울어대는 깊어가는 가을 날의, 교현재 마당 밤하늘에는 뿌옇게 물안개가 끼어 있다. 시원한 밤공기와 느끼지 못할 만치 잘게 부숴져 닿는 이슬비를 맞으며, 오늘 있었던 석길이네 문상을 정리해 본다. 천수를 누리고 많은 조객들에 둘러싸여 호상으로 마감하는 인생은 참으로 복이 있다. 그만큼 살아 생전에 본인이건 조상이건 많은 덕을 쌓은 결과이지... 석길이 어머님 전을 뵈오며 이 집도 많은 복을 받은 집이구나... 나도 이 가을에 부모님을 떠나 보내 드렸었는데... 먼저 자리하고 있던 친구들과 반갑게 돌아가며 악수를 하고, 차려주는 저녁을 맛나게 들면서 들뜬 기분에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너무도 정다워 보인다. 음주운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 취하면 대리운전이 있으니 하며 분위기에 서서히 동화되는데.. 몇 십년 만에 보는 친구들도 옛 얼굴들이 그대로 살아 있으니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중년의 느긋하고 여유 있는 모습들이 참으로 보기 좋구나.. \"야 정말 오랫만이구나 이게 몇년 만이냐\" \"대전에서부터 올라왔냐?\" \"키나바루산 등정 후에는 웬만한 산은 눈에 차질 않아\" 영옥이가 어깨를 들썩하며 이미 풀린 눈을 흡뜨며 무게를 잡기도 하고.. 경택이는 고산병으로 죽을 고생을 하고는 다음에도 가려느냐 했더니 또 간단다. 승일이는 금강산은 하이힐 신고 오르는 산이라며 내년에는 킬리만자로가 어떨까 한다고.. 종섭이는 분당권 모임을 활성화하자며 자기한테도 꼭 연락하라고 하고.. 기국이와 영일이는 하사관학교 선후배로 군대 얘기 곁들이다가 결국엔 나의 돌파리 전력까지 나오고 말았다. 후후.. 그 때 5천냥이면 큰 돈이었지.. 학주하고 일표는 병원 얘기로 꽃을 피우기도 하고.. 휘공회 화환을 주도한 운학이와 기국이는 동기 주승빈한테 주문한 얘기를 곁들인다. 덕분에 커다랗고 멋진 화환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지.. 대전에서부터 시간을 내어 찾아온 의택이가 담가온 밀주를 내놓고는 친구들한테 억지로 한 잔씩 돌리는데, 매우 잘 담근 술인데 좀 독한 것 같아서 나는 조금만 했다. 영상이는 강동의 예술 혼에 대해 얘기하고, 운학이는 선봉이를 반드시 끌고 오겠다며 내일도 참석할 거라 한다. 곧 이어 광호도 반갑게 들어서고, 운학이, 학주와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를 한다. 응구는 회장답게 좌중을 오가며 입담에 바쁘고, 성신, 일붕, 태훈, 진규 그 외의 여러 옛 친구들이 그동안의 만나지 못했던 적조함에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이 깊어가는데도 일어날 줄을 모르니 상에는 계속 소주, 맥주의 빈병이 쌓여간다. 59회 젊으신 선배까지 합석하여 정겨운 얘기들로 밤은 깊어가는데.. 독감으로 핼쓱해진 가운데도 친구들 태우고 가야 한다며 기다리던 자천이가 불쌍해서, 몇몇이 아쉽지만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로 했다. 악수로 가까운 훗날을 기약하고 일어서며, \"석길아 우리 집에서 한 탕 놀자\" \"노는 건 나한테 묻지 마라\" 친구들을 뒤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다른 조기들 사이로 휘문 67회 조기가 유난히 돋보이고 있었다. 문밖으로는 가을빛이 정히 좋은데 소맷자락 잡고 나서자니 오히려 가련하구나 정다운 삼봉의 빛은 어언 다섯 해 전인데 푸른 이끼 낡은 집에 그대로 있고 붉은 잎은 수풀에 물들어 곱네 동서로 떠돈 것이 벌써 오래 됐는데 산 속은 저녁안개에 잠겨 있네. (‘가을날 과지초당에 거듭 오다.\' 秋日重到瓜地草堂’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