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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회게시판 - 문예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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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부대"(찻집에서 잠시잠간 쓴 작은 소설)
서원입구 매표소에서 젊어 보이는 한 사람이 보란듯이 유공자증을 흔든다. 

물론 공짜로 입장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씹던 껌 내뱉듯 중얼거린다.


 

"시브럴 이나라는 완장찬 놈들이 너무 많아 짜장면 집에서도 흔들어 댈놈"

 


그는 식상했다는듯 서있던 줄에서 빠져나와 가까운 의자에 걸터앉아 

상념에 젖는다. 

 


"나 보통사람 국민 여러분 앞에 항복합니다."


 

어느 대통령후보의 제스춰가 있기전까지 서울 거리는 온통 체루가스로 가득했다.

거리 곳곳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게리라식 데모, 민주화 열풍은 대단했다. 

데모대 중에는 소위 "넥타이부대"도 더러 섞여 있었다. 

누가 뭐래도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서 근무시간에 슬며시 빠져나와 

데모에 참가하고 끝나면 체루가스 털어내고 직장으로 돌아가는, 

순수한 민주화 기대자들-. 

체포되면 직장을 쫓겨나 목숨과도 같은 처자식의 생계위협을 감수하며 

데모대에 몸던진 사람들이다.

   
 

김씨는 서초동 직장에서 빠져나와 광화문에서 데모질하다 체포돼 

종로서 유치장으로 넘겨졌다. 밤새도록 심문이 이어졌다. 

형사는 배후가 누구이냐를 찾으려 골몰했다.김씨의 대답은 시종일관 똑같았다. 

 


"난 배후도 없고 정치도 모르는 순수한 직장인이며 국민의 한사람일뿐이다. 

하지만 여당이 국민의 정당이라면 야당도 국민의 정당이니 

야당 창당대회를 방해하지말라"


 

심문하는 형사도 지치고 김씨도 지칠 때쯤 그 형사는 전경을 불러서 

무어라 속닥댔다. 전경은 김씨를 철창대신 정보과 형사 대기실로 데려갔고 

문도 잠그지 않고 가버렸다.                                





 "스님들이 스크럼짜고 조계사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진압해!"

"종로입구 빌딩4층에 스피커가 설치돼 작동중입니다"

"침묵시켜!"

 


경찰서 상황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다급하고 요란한 

본부와 진압경찰간 무선교신 소리에 김씨는 잠이깼다. 밖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요란했다. 

그런데 김씨가 눈을 부시시 뜨고 일어나는 순간 말문이 막히는 정경이 펼쳐졌다. 

김씨의 직장 직속상관인 부장과 그의 동료가 긴장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김씨가 신분을 감추다 형사한테 이판사판으로 건네준 명함을 보고 연

락한 것이 분명했다. 부장은 김씨  앞에 종이 한장을 보여 준다. 

 


신병인도확인서 김씨

인계자 경찰 누구누구 

인수자 00회사 부장 누구누구. 

 


부장은 아무소리 말라는듯 입을 가리키고 김씨의 옷소매를 끌었다. 

어리벙벙해진 모습으로 막나가려는데 이번에는 정보과장 팻말이 붙은 

책상에 앉은 사람이 한마디한다.


 

"그사람 오늘 퇴근시키지 말고 꼭 붙들어 두셔야 합니다"

 


회사로 가는 차안에서 부장은 신신당부를 했다. 회장한테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빌라는 요지. 

김씨는 이미 각오한 일 구차한 이야기는 안하기로 마음먹고 

회장실 문을 두드렸다. 온갖 상상이 교차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전혀 똣밖의 정경이 펼쳐졌다.       

김씨를 쳐다본 회장은 빙긋이 웃으며 춥지 않았느냐 아침 먹었느냐 

연이어 물으더니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멍해진 모습으로 나오는데 회장은 별일 아니라는듯 신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회사에 정신 똑바른 놈도 있네...

그 회장은 부산마산지역 소요때 그 지역계엄사령관을 지냈던 사람이다.

그후 별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이 지나갔으며 주위사람들에게는 

그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김씨는 요즘 국가가 입은 자잘한 상처에 똥파리떼처럼 꼬여들어 

마치 민주투사인양 나대는 인간들, 유공자증 흔들고 다니며 고궁이든 유적지든 

무상출입하고자 하는 인간들, 외국으로 이민가서 조국을 향해 침뱉는 

인간들을 보면 당시 어디서 무얼했느냐고 꼬치꼬치 묻고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산다. 그는 누가 인정을 하든 말든 

자신은 선비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이나라가 위기에 흔들리면 수없는 넥타이 부대들이 

또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비록 본뜻이 실종된, 동동주 누룩내가 진동하는 

선비촌을 맴도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