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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대단한 밴드부...
서울 六百年史 中 《양악대(洋樂隊)의 해산》 한일합방 조약이 공포된 1910년 8월 29일 장예원(掌禮院) 악사장 훈6등 백우용(白禹鏞)은 특승(特陞)되어 훈5등에 서훈(敍勳)되었다. 특승이란 말이 뜻하듯이 왕조(王朝) 최후의 날에 그 동안의 공적을 인정하여 특별한 상훈에 올렸다는 것인데, 그만큼 백우용의 왕가에 대한 봉사가 각별하였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양악에 대한 예우는 깍듯이 하면서도 고유의 국악에 대한 이해는 희박했다는 반증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앞서 융희원년(隆熙元年)(1907) 9월 1일자의 포달(布達) 제160호로 군부소관 군악대를 혁파하고 그 대원들로 제실악대(帝室樂隊)를 조직하는 규정이 반포되었다.[註7] 군악대 폐지에 관한 일은 그해 9월 4일에 내린 칙령 제20호로 군부소관 군악대 이하 관제 및 규정폐지건이 재가(裁可) 반포되므로서 한국개화의 선봉적 역할을 담당했던 군악대는 창설된지 8년만에[註8] 해산되고 동 대원들로 편성된 제실양악대가 유지되다가 1910년 후에는 이왕직양악대로 계속 잔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15년에는 이왕직(李王職)의 직제(職制)가 고쳐져 6과로 사무가 분장(分掌)되었는데 양악대는 장시사(掌侍司)에 속하고 아악대는 제사과(祭祀課)에 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년 5월 고용원 중 양악대의 정원은 다음의 <표:양악대의 구성과 급료>와 같다.[註9] 양악대의 직종, 정원 및 그 보수가 아악대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고 균등하게 책정되어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하여 1916년 1월에는 군악대와 제실악대 편성에 공이 큰 이왕직 양악대의 음악교사 독일인「에케르트」가 만기로 해임되어 왕실에서는 위로금으로 50원, 귀국여비금으로 900원, 기념품비로 500원을 하사하여 그의 다년간의 노고를 치하하였다.[註10] 그러나 「에케르트」는 이 해 8월에 귀국도 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타계하니 순종(純宗)은 100원을 하사하여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註11] 이때 「에케르트」는 이미 양악대를 고용만기로 사면하고 무관한 관계에 있었지만 그의 사망 후 이왕직 양악대는 해산되고 말았다. 한국개화의 상징처럼 설치되었던 양악대의 대원이었던 이윤용 · 백우용을 비롯하여 초창기부터 악기와 음악에 생명을 바치기로 작정했던 모든 대원들은 나라와 군대를 잃고 마지막으로 남은 음악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나라없는 그들에게 있어서 이 양악대는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註12] 이왕직으로부터 해산된 양악대는 민간자영단체로 경성악대를 만들어 사력을 다하였으나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염출할 방도가 없어 1920년경에 스스로 와해되고 말았다. 왕실 악대의 악기를 하사받아 창설된 휘문 밴드부입니다. 우리나라 밴드부사에 가장 중요하며 역사가 깊은 밴드부입니다. 뿌리가 깊으니 웬만한 바람에는 미동도 않지요. 후후후... 결속력 또한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