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의 거봉 박종화 (선배 작가님)
🧑 이풍호
📅 2016-03-04
👀 1077
역사소설의 거봉
박종화 朴鍾和, 1901년 10월 29일 ~ 1981년 1월 13일[1])은 대한민국의 시인, 소설가이다. 본관은 密陽(밀양)이고 호는 月灘(월탄)이다.
한국 문단의 거장 월탄(月灘) 박종화는 그의 말년까지도 왕성한 창작 생활을 지속하였다. 누구보다도 달을 좋아해서 문학에 투신했다는 월탄은 20세기 벽두--정확히 1901년 10월 29일--서울에서 태어났다.
근 60년 동안의 작가 생활을 하면서, 문화계와 예술계의 원로로서 예술원 회장으로 추대되어 다양한 사회 활동을 계속해 왔었다.
조금도 쉼 없고 지칠 줄 모르는 그의 경력을 창작 생활과 사회 활동으로 연소했었다.
지난날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조로하고 단명했던 것과는 달리 가장 진 연대를 문학에만 집념하고 투신했던 작가로는 오직 월탄 박종화가 기록될 것이다.
20세의 젊은 시절에 <우유빛 거리>(1921) 란 시를 써서 비롯된 그의 작가 생활은 이 땅의 신문학이 펼쳐진 초창기의 백조파의 동인이 됨으로써 더욱 본격화되었다. 말하자면 20년대의 개화기에서부터 오늘에까지 반세기 이상의 장구한 시간을 현역으로 일관하면서 엄청난 창작을 해 왔던 것이다.
'월탄 박종화 선생은 현존에 계시는 한국의 문학사다. 우리 나라 신문학 개척자의 한 분이다. 뿐만 아니라, 시에 있어서나 소설에 있어서나 신문학 초창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작품 활동을 계속해 오시면서 놀랄만한 업적을 남기셨다.'작가 정비석의 이같은 말은 월탄의 작가적 업적을 천명하는 것으로서 그가 걸어온 발자취는 바로 우리의 현대 문학사요, 우리의 최근세사이기도 하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풍운 감도는 구한말에 태어나 3·1운동과 때를 같이해서 불붙는 민족적 의분에서 낭만주의 시인으로 출발한 그는 몹시 다양한 문학 분야에 손을 대어 왔다. 시에서부터 소설, 수필, 평론 등 거의 모든 장르에 붓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민족적 사명감에서 역사 소설에 일관해 온 작가인 것이다.
'나는 역사 소설의 형태를 빌어서 문학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서 나는 현대 인간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 땅에 조국을 아름답게 건설해 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30 이후에 시와 평론에서 소설을 쓰게 하고 소설 중에서도 신변 잡사의 소설을 떠나서 역사 소설을 쓰게 하고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나의 관뚜껑을 덮을 때까지 역사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을 갖데 한 동기다.( 《월탄 박종화 대표작 성집》)
월탄 자신이 말했듯이 그는 오로지 역사 소설을 위해서 살아왔고 또 그것으로 시종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실로 이 땅의 역사 소설은 월탄에 의해 비롯되고 다져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그를 톨스토이와 비교했듯이 그는 대하 역사 소설로서 가장 많은 작품을 썼고 가장 폭 넓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지금까지 3권의 시지, 18편의 장편, 12편의 단편, 그리고 3권의 수필집, 평론 등이 그의 소산이다. 18편의 장편이 2권 내지 6권의 분량으로 구성된 것을 감안한다면 그의 작품량은 한국 문학사상 최고의 기록이 된다.
더욱이 그는 가장 많은 작품을 썼을 뿐만 아니라 그의 풍성한 낭만 문학으로 가장 많은 독자의 인기를 거두고 있다. 또한 그는 단순히 문필에만 전념한 작가는 아니었다. 역사 의식에 투철해서 일제에 항거한 민족주의를 고수하였고 해방 후 줄곧 문단의 지도자로 또는 대학 교수로서 사회에 앞장 서 왔다.
생애
1901년 10월 29일 한성부(서울) 출생으로 1920년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문학 동인지 '문우'를 발간하면서부터 문학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 뒤 시 전문지 《장미촌》에 〈오뇌의 청춘〉, 〈우유빛 거리〉를 발표하며 등단, 1922년 문학잡지 《백조》 발간에도 참여해 〈밀실로 돌아가라〉를 발표했다. 홍사용, 박영희와 함께 일명 '백조파'를 형성했다.
초기에는 현실과 유관하지 아니하고 현실상 기초나 가능성이 없으면서 헛되고 실현될 가망이 없는 분위기의 시를 쓰다가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관심을 점차로 돌리면서 역사소설 창작에 몰두했다. 1924년 처녀 시집 '흑방비곡'을 발간한 이후 '시인'을 쓰면서 소설로 전향했다. 1935년 장편 '금삼의 피'를 '매일신보'에 연재하면서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아랑의 정조', '다정불심'를 위시해 많은 역사소설을 발표했다. 1945년에는 전 조선문학가 협회 부회장을, 1947년에는 성균관대학교 교수, 서울시 예술위원회장을 역임했다.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장, 서울신문사장, 서울시 문화위원회장을 역임했고
1954년 예술원 회원, 이듬해 예술원장이 되었다. 1957년 성균관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를 받았고 1962년 동 대학을 정년퇴직했다.
1964년 문인 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통일원 고문, 통일 주체 국민회의 대의원이 되었고 문화 훈장 대통령장, 국민 훈장을 받았다.
월탄의 외아들이 소설가 현진건의 여식과 혼인하여 양인은 사돈 관계이다. 보통 작가 사후 그 사람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자 작가의 성명을 딴 문학상이 생기기 마련인데 월탄은 1966년에 제1회 5·16민족상을 받고나서 그 상금을 이용해 본인의 호를 건 월탄문학상을 만들었다.
월탄이 지은 역사소설은 다수가 영화나 TV 드라마로 극화하였다. 월탄의 작품이 원작인 영화로 신상옥이 〈금삼의 피〉(1938)가 원작인 《연산군》(1961)으로, 〈다정불심〉(1942)가 원작인 《다정불심》(1967)이 있다.
월탄의 작품이 원작인 TV 드라마로는 〈세종대왕〉(1969)이 원작인 한국방송공사 대하사극 《용의 눈물》, 〈여인천하〉(1959)가 원작인 서울방송 대하사극 《여인천하》, 〈다정불심〉(1942)이 원작인 문화방송 대하사극 《신돈》, 〈자고 가는 저 구름아〉(조선일보 연재, 1962)가 원작인 서울방송 대하사극 《왕의 여자》가 있다.
-3/3/2016 뉴욕 휘문위클리에서
*59회 졸업식에서 우리 졸업생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신 박종화 선배님이시지요. 저에게 특별히 옛 어렸던 시절에 기억되는 것은 신문연재소설 '자고가는 저 구름아'를 열심히 읽던 일이었지요. (이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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