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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데이
발렌타인 데이
윤 관 호

 오늘따라 꽃가게, 카드가게, 쵸코렛 판매점에 사람들이 유난히 들락날락하는 것이 보였다. 같이 근무하는 오십대의 미국인 동료 죤과 스탠리가 오늘 발렌타인 데이에 부인에게 줄 카드를 샀다면서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카드를 사갔으니 다 팔리면 어떡하느냐고 내게도 아내에게 줄 카드를 빨리 살 것을 권유했다.

나는 발렌타인 데이를 지키지 않으며 아내를 사랑하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카드를 주어야만 되는 것이냐고 말했다. 그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며 카드를 주면 아내를 더욱 기쁘게 하며 뭔가 다르게 하는 것이라고 예기했다. 

미국에 온지 17년이나 되었다. 발렌타인 데이가 2월 어느 날 젊은 연인들끼리 쵸코렛이나 꽃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나는 죤과 스탠리 처럼 나이가 많이 든 남자들도 부인에게 카드를 주는 것인지를 몰랐다. 정확한 날자도 모르고 있었다. 확신에 차서 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발렌타인 데이에 카드를 주는 것에 무엇인가 좋은 것이 있기에 저들이 저러겠구나 생각했다. 열린 마음으로 겸손히 그들의 권유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퇴근 후 집 근처 동네 잡화점에 가서 카드 두 장을 샀다. 한 장은 어머니를 위해 또 한 장은 아내를 위해 샀다. 어머니용 카드들은 많이 눈에 띄었으나, 아내용 카드는 이미 꽤 많이 팔렸는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꽃가게는 그야말로 연중 최고의 대목을 보고 있었다. 꽃 한 다발에 $50 이나 하여 사지 못하고 다른 꽃집에 가 보니 마찬가지 가격이라 다발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노란 장미 한 송이와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샀다.

집에 와 우선 손에 들고 간 장미꽃부터 선사했다. 어머니에게 노란 장미 한 송이를 드리니 웃으시며 “발렌타인?”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발렌타인 데이를 알고 계신 것에 대해 속으로 놀랐다. 대학을 둘씩이나- YWCA 노인대학과 후러싱 제일교회 경로대학- 다니신 어머니가 왜 모르시겠나 이내 생각했다. “네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에요 그래서 어머니 드릴 꽃 한 송이와 서영 엄마 줄 꽃 한 송이 샀어요” 했더니 어머니는 잘 했다고 하시면서 웃으셨다.

조금 후 직장에서 돌아 온 아내에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주었다. 아내도 웃으면서 좋아했다. 방에 들어 가 카드에 약간 고심하여 멧세지를 적은 후 샤워를 하고 나온 아내에게 카드를 주었다. “사랑하는 당신, 하나님께서 당신처럼 훌륭한 아내를 주시어 나를 축복하셨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행복을 빌고 있는 남편 윤 관호” 

카드의 위력은 꽃 한 송이의 위력 보다 더욱 강력하게 나타났다. 아내는 “당신한테 카드를 처음 받네” 하며 매우 기쁜 표정으로 포옹을 하려 달려들었다. 잠시 동안 방안에서 웃으며 도망 다니다가, 아니지 하고 가볍게 받아 주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그 동안 아내에게 고생만 시키면서 카드 한 장 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어머니께 드릴 카드를 아내에게 보여 주었다. 그 카드에는 아내의 이름도 들어 있으므로 아내에게 먼저 보여 주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내용이 괜찮다며 웃었다.

“어머니, 항상 여러 가지로 돌보아 주시고 베풀어 주시는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기쁜 나날이 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2002년 2월 14일 작은 아들내외 관호와 인숙 올림” 어머니께 카드를 드리며 이번에는 내가 먼저 따뜻하게 껴안아 드렸다. 어머니는 감격해 하시며 웃으셨다.

어머니의 크게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지려는 순간 나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 회개했다. 연로하시고 불편한 몸으로 언제나 정성껏 나와 가족을 돌보아 주시는 어머니.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하시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무감각해졌었다. 감사와 사랑의 표현을 하지 않고 지냈었다. 모처럼 불효자식에게서 받으신 장미 한 송이와 카드 한 장에 저토록 감격하시다니 나의 잘못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했다. 

이웃에게도 작은 사랑의 표시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던 허물 많은 나. 가족은 물론 이웃에게도 사랑의 표현을 하는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13년 전 글이나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