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교우회게시판 - 자유게시판

휘문교우회 로고
현 중국정부의 황제와 섭정왕은 누구인가?
<FONT face=굴림>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22일 북경에서 열린 제17기 중앙위원회 1차회의(17기 1중전회)에서 임기 5년의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대표하는 총서기로 재선출됨으로서 집권 2기가 시작됐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재선돼 중국은 앞으로 당분간 후.원 체제를 유지하게 됐다. <BR><BR><FONT color=#333399><STRONG>그러나 胡총서기는 이날 선출된 중국공산당 핵심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에 자신의 직계인 리커창(李克强) 랴오닝성 당서기 1명만을 상무위원회에 진입시켰으나,  장쩌민(江澤民) 전임 당 총서기는 자신 계열의 상무위원들을 6명 (3명 유임+3명 신임)이나 확보하여 정치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STRONG></FONT></FONT><BR><BR><FONT face=굴림>하지만 胡총서기는 또 다른 권력 기구인 당중앙위원회와 군부, 지방에 자기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집권 2기의 토대를 구축했다. </FONT><BR><BR><FONT face=굴림 color=red><STRONG>현재 중국 정부에는 1명의 황제가 있고 또 다른 1명의 섭정왕이 있다고 비꼬는 말이 있다. </STRONG></FONT><BR><FONT face=굴림>실제로 胡주석의 집권 초기에 중국 정부는 TV 드라마에서 섭정이나 수렴청정의 내용이 나오는 드라마의 방영을 금지시킨 일이 있다. 이유는 집권 초반에 자신이 힘없는 황제로 보이고 江전주석이 실제 권한을 휘두르는 섭정왕으로 느껴져 그렇게 했던 것이나, 나중에 집권 기반이 강화되면서 이 조치는 해제된 적이 있다.</FONT><BR><BR><FONT face=굴림>한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섭정은 바로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었다. </FONT><FONT face=굴림>그럼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섭정왕은 누구이기에 이러한 섭정의 내용이 들어 가 있는 드라마의 방영까지 중국 정부는 막았을까? 그 드라마는 바로 청나라 3대 황제인 순치제(順治帝)의 섭정왕이었던 예친왕 도르곤(多爾袞)을 주인공으로 하는 청궁풍운(淸宮風云)이라는 드라마이다. </FONT><BR><BR><FONT face=굴림> <TABLE style="WIDTH: 240px; HEIGHT: 483px" cellSpacing=2 width=240 align=left border=0> <TBODY> <TR> <TD> <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border=0> <TBODY> <TR> <TD bgColor=#ffffff><IMG style="WIDTH: 288px; HEIGHT: 454px" height=504 src="http://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710/2007102418323045.jpg" width=400 border=0></TD></TR></TBODY></TABLE>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100%" border=0> <TBODY> <TR> <TD style="FONT-SIZE: 9pt; COLOR: #777777;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 bgColor=#e8e8e8>▲     © 플러스코리아 </TD></TR></TBODY></TABLE></TD></TR></TBODY></TABLE>이 드라마는 한국에서 대청풍운(大淸風雲)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케이블 TV에서 절찬리에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 드라마는 청나라 초기의 이야기로 주인공은 예친왕 도르곤(<STRONG>병자호란 때 조선왕 인조를 발로 걷어차는 인물</STRONG>)과 청나라 2대 황제인 태종의 황후였던 효장문태후(孝莊文太后)이다. 황제도 아닌 일개 왕이 왜 주인공으로 그려졌을까? 도르곤은 비록 명목상 황제는 아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황제 위에서 통치를 했으며, 나중에 순치제의 모친인 효장문태후와 결혼을 해 황부섭정왕(皇父攝政王)으로 봉해지며 사후에 成宗이란 묘호로 추존을 받는 인물이다. </FONT><BR><BR><FONT face=굴림>도르곤은 청 태조 누루하치의 14번째 아들로 태어나 이복형인 태종 밑에서 중용되어 예친왕으로 봉해진다. 태종이 죽을 때 자신의 후계자로 유능한 동생인 도르곤을  지명했으나, 도르곤이 이를 거절하여 태종의 8살짜리 어린 아들인 순치제가 황위에 오르고 도르곤은 섭정왕으로 청나라를 통치하게 된다. 그의 7년간의 섭정 기간 중 명나라 오삼계(吳三桂)장군의 구원 요청으로 山海關을 넘어 북경에 입성해 중원을 지배하고, 사심없이 어린 조카인 순치황제를 도와 훗날의 大淸帝國을 이루어 놓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FONT><BR><BR><FONT face=굴림>도르곤은 중원을 지배한 후 정치 행정 등 여러 제도를 정비하고, 한자를 만주어와 같이 정부 문서에 같이 사용하고, 한족을 관리에 등용하기도 하여 한족과 융화를 이루어 낸다. 그리고 많은 한족의 관습을 받아 들여 이민족인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참고로 몽고족의 원나라는  청나라와는 전혀 달리 몽고족만을 위한 정책을 취했기에 100년도 못 버티고 북쪽으로 쫓겨 간다.) </FONT><BR><BR><FONT face=굴림>후세 史家의 평가는 도르곤이 구축해 놓은 기반으로 청나라가 수백 년간 중국 대륙을 지배할 수 있어 그의 정치력과 통솔을 최고로 평가하고 있다. 도르곤이 구축해 놓은 기반 위에 만주족(구 여진족)인 청나라의 황제들은 지금까지의 수백 명의 漢族 황제들보다 뛰어난 업적을 남기게 된다. 특히 최전성기를 이룬 강희제(康熙帝)와 건륭제(乾隆帝)는 중국 영토를 2배 이상 확장시켜 지금의 후손들에게 엄청난 유산을 남기게 된다. 예전의 중국 영토에서 우리 땅이었던 만주와 내몽고, 신강, 티벳, 대만이 더해진 것이다. </FONT><BR><BR><FONT face=굴림>비록 蛇足이고 허황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STRONG><FONT color=red>임진왜란 당시 조선 조정이 자신의 모국에 원병을 보내겠다는 누루하치(쥬신제국의 마지막 영웅)의 제안을 수용해 조선과 만주족이 같이 손을 잡았더라면, 병자호란 같은 수모도 없었을 것이고 광활한 만주 땅은 물론 아마 지금의 중국 땅까지도 공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당연히 우리 민족의 역사였던 금나라와 청나라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편입되는 불상사도 없었을 </FONT><FONT color=red>것이다.</FONT></STRONG><STRONG><FONT color=red> </FONT></STRONG></FONT><BR><BR><FONT face=굴림>어릴 적 애인사이였던 형수 효장문태후(태종비이며 순치제의 모친)와 결혼하여 황부섭정왕으로 봉해지기도 한다. 사냥터에서 낙마하여 죽은 후에는 成宗으로 추존되었다가 정적들에 의해 반역자로 몰려 반납당하고 족보에서도 삭제되는 수모를 당하나, 건륭제에 이르러 청 제국 수립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방치되었던 그의 무덤이 복원되고 완전 복권하게 된다. </FONT><BR><FONT face=굴림></FONT><BR><FONT size=1><FONT face=굴림>시동생인 도르곤과 재혼한 효장문태후는 태후 시절 정치 일선에는 일절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예전엔 황후였으나 예친왕에게 再婚를 했다고 하여 죽은 후 심양에 있는 태종의 능에 합장되지 않고 지금의 하북성 준화시에 있는 청동릉 境外에 묻힌다. </FONT><BR><BR><FONT face=굴림>여기에서 역사가 주는 교훈이 있다. </FONT><BR><FONT face=굴림><FONT color=blue>조선은 섭정을 했던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정치적 아집으로 인해 결국 망국의 길로 들어섰고, 청나라는 도르곤이 사심없는 섭정으로 구축해 놓은 기반을 바탕으로 수백년간 중원을 지배하는 강한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FONT> 당시 도르곤은 분명 황위에 오르려고 마음만 먹으면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조카인 순치제를 돕는 것에 만족했고, 자신이 순치제를 폐하고 황제가 되면 내분이 일어나 위대한 대청제국은 앞으로 있을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황제에 오르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판단력과 마음가짐이 대청제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FONT><BR><BR><FONT face=굴림 color=red><STRONG>지금 중국 정부에는 황제 외에 분명 또 한명의 섭정왕이 있다. 그 섭정왕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중국의 정치/경제가 발전하느냐 후퇴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대원군처럼 노망이 들어 정치적 아집이 있으면 쇠퇴의 길로 갈 것이고, 그가 도르곤처럼 사심없이 황제를 돕는다면 중국은 다시 한번 크게 발전할 것이다. </STRONG></FONT><BR><!--관련기사:시작--><!--//관련기사:끝--><BR></FO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