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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추억\"
200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저녁 67회 경기중부지회 송년모임이 있었습니다. 금년의 마지막 해가 뉘엿뉘엿 걸쳐지는 얼어붙은 호수를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 한 해가 망각 속으로 흘러가는구나...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지요... 오십의 고개를 넘어가는 개인적으로도 참 힘든 해였습니다. 나만이 아닌 67회 동기들 모두 닥친 오십 고개였고, 휘문의 오랜 역사에서도 가장 큰 역사가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는 해였습니다. “이 넘들 왜 이렇게 안 와?” 먼저 온 수현이가 핸폰을 들고 설쳐댑니다. 들어오면서 마누라하고 길 잘못 들었다고 책임 공방하느라 아웅다웅하더니 이내 제 자리를 찾고 쑹얼쑹얼댑니다. “아직도 집이야? 이 넘이 미쳤나?” 곧 이어 흥규네가 못 찾고 고매리까지 갔다가 겨우 찾아 들어왔습니다. 미술하는 누님 네가 별장을 양식카페로 개조한, 호수 전경을 바라보게 지은 언덕 위에 서있는 집이라 밖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기네도 한 바퀴 휘돌다 들어왔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여론에 따라 오늘의 주인공인 세현이네 부부는 놔두고 먼저 먹기 시작했습니다. 휘문여고생들은 옆 테이블에 한 자리를 따로 잡고 앉아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산속 별장 위로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세현이 부부가 도착하고 늦은 저녁을 들기 시작하면서 오랜만에 친구들 만난 기분을 양기 오른 입으로 토해냅니다. 실내에 장식된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의 전등 불빛과 멀리 호숫가 뒤로 점점이 보이는 작은 불빛이 스러져가는 2005년을 역사의 뒤안으로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일행은 1층의 온풍기 혼자 따뜻하게 기다리고 있던 노래방으로 들어갑니다. 작년에도 한바탕하고 갔던 곳이지요. 예의 수현이가 마이크를 잡고 설치기 시작합니다. 이 넘은 조용필 노래의 대가입니다. 흥규도 한몫합니다. 그 옛날 학창시절의 구수한 노래 가락에 전부 흥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상기가 왠지 조용합니다. 세현이가 나서더니 이장희의 “한 잔의 추억”을 부르자, 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 이 넘은 헛소리만 하더니 노래는 슬픈 노래만 하냐?” 다들 웃었지만 각자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세현이네는 두어 달 있으면 이 땅을 완전히 떠나 지구 반대편으로 갑니다. 새해맞이는 노래방의 창문 넘어로 하고, 1시 가까이 되자 동해바다로 가서 해돋이를 맞자 했으나, 세현이의 의견을 존중해서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분당으로 가는 길을 몰라 내 차를 따라오던 세현이네 차가 옆을 스쳐 지나가며 내려진 창밖으로 손을 흔들고 사라져 갔습니다. 집사람이 세현이 처에게 들었다며 내게 전한 말이 내내 귓가를 맴돌고 있습니다. “남들 다 놓을 때도 끝까지 해보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우리는 애국자예요.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어요.” 2006년의 새로운 날이 열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