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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리 斷想
나뭇골 계곡을 거슬러 산등성이를 지나면 새나리골이 나온다. 아내와 저녁 노을을 맞으며 온 종일 뜨거운 햇빛에 시달린 작은 텃밭, 꽃과 나무들에 물을 주다가 작은 오대산 원시림 생각이 나 새나리골로 향했다. 그동안 수없이 지나면서도 한번도 들어간 적 없는 작은 전통 찻집을 찾았다. 들어가면서 보니 간판에 새나리 찻집이라고 쓰여 있다. 조용한 실내는 전통 한식을 기본으로 해 옛 내음이 물씬 묻어난다. 온통 한 장의 유리로 된 창가 식탁에 앉으니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울창한 숲이 한 눈에 잡힌다. 아내와 나는 기대 이상의 풍경에 잠깐 말을 잊었다. 아니 이런 데가 숨어있었다니.. 산채비빔밥을 시켜 놓고 정원으로 나와 숲을 바라보니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태고 적부터 있어 보이는 우람한 나무들 사이로 저 밑에 작은 시냇물이 숨어 흐르고 있었다. 산 속 저녁 신선한 냉기가 숲으로부터 올라오며 머리를 깨끗케 한다. 사방 숲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작은 찻집의 저녁은 너무도 상쾌하다. 다시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문 곁에 빛 바랜 신문 기사 하나가 붙어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새나리 찻집에 관한 신문기사를 오려 놓은 것이 빛이 바래 뿌옇다. 아까부터 찻집에 흐르는 음악이 정겹다고 느꼈는데 70년대의 노래들이 연이어 흘러나온다. 산채비빔밥이 나오고 토속 음식점의 토속적인 내음과 함께 고추장을 듬뿍 넣고 비벼 먹기 시작하는데 둘이 다 말이 없어졌다. 망각 속으로 흘려 보냈던 옛 노래들 때문이다. 송창식, 이장희 등의 노래가 연거푸 흘러나오는데 갑자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기억이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아련한 추억들이 물밀듯 밀려들며 가슴 한편을 적신다. 장발 단속 피하려 요리조리 피하다 잡혀 강제로 머리를 깎이던 일, 종로에서 친구들하고 빈대떡에 막걸리 마시며 개똥철학 하다가 통금에 걸려 여관 신세지던 일, 명동에서 생맥주로 완전히 취해 고래고래 떠들면서 골목골목 누비던 일, 동대문 싸구려 호텔 고고장에서 밤을 지새우던 일, 군대 가는 친구 배웅한다고 술 취해 떠들던 일, 암울한 현실에 지쳐 대마초 피는 친구를 대책 없이 지켜보던 일, 모든 게 싫어 저 멀리 바다 건너 이국 땅으로 향하던 사랑하던 친구 찾아 하늘 쳐다보며 은빛 날개 헤아리던 일, 저 비행기에 탔을까? 알지 못할 서글픔 속에서 별 헤듯 하던 일... 저 멀리 망각의 강으로 떠나 보냈던 옛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간다. 추억으로 뒤범벅된 잊혀졌던 일들이 봇물 터지듯 흐르며 산채비빔밥과 오버랩 된다. 발목을 차 오르던 추억의 시냇물이 잠깐 사이에 무릎을 거쳐 허리에 이르고 이윽고 강이 되어 내 마음을 흘러간다. \"루루루루루루루 루루루루루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있겠지 눈물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얼굴....\" 새나리 찻집의 작은 실내에서는 잊혀졌던 옛 노래가 그치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