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계사년 첫날
시인 신 성 수
정로환 세 알을 먹고 화장실에서 올해 신춘문예를 읽고 일어서다가 그만 신문이 세탁기에 빠지고 말았다. 거기 계사년 첫해를 시작하는 신인 문우들의 사진이 물속에 누워 있었고, 아들 나이의 김재현 시인의 ‘손톱 깎는 날’도 둥둥 떠 있었다. 시인의 첫발을 내딛는 시인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고 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제 시가 무섭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새해 첫날 서설을 보기 위해 들락날락하고 첫 일출을 기다리면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깜빡 잠들어 쉰 세 해하고도 하루를 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여덟시 사십분에 화들짝 잠이 깨었다. 서설은 언제 내렸을까. 녀석들은 내렸던 눈 위에 허옇게 드러누워 있었고, 나는 서둘러 눈을 퍼 담아 차가 한 대쯤 지나갔고 한 두 사람 지나간 타이어 자국과 발자국 위에 쏟아 부었다.
눈을 퍼 담아 내다 버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깊이 잠들 수가 있다니, 어떻게 그 귀한 서설과 첫 일출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나이 탓일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알 수 없이 속상했고 한 삽이라도 더 담아서 눈을 내다 버렸다. 눈을 쓸면서 요즘 들어 자꾸 작은 것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 더 마음이 상했다.
이젠 신문도 세탁기에 빠뜨리고 만다. 조심스러운 생각으로 가장 깨끗한 작품들을 물에 적시고 만 것이다. 나는 빨래 사이에 혹시 시인의 손톱이 떨어져 있지는 않나 생각해 보다 또 치과에서 가르쳐 준 대로 양치질을 하지 못했다.
저녁에 다시 눈이 내리고 추위는 모질게 몇 날 더 계속된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새해 첫 날, 새해 첫 미사에서 뱀은 지혜의 상징이라는 강론을 들었다.
아마도 오늘 새벽 나는 깊이 잠들어 뱀처럼 구불구불 기어서 어딘가 다녀온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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