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 신성수
📅 2012-12-26
👀 574
(詩) 비둘기
詩人 신성수
좀 씻어라. 그 꼴이 무엇이냐
씻어 줄 수도 없고, 그래도 네가 명색이 평화의 상징이라면서
도대체 그 모습이 무엇이냐
나는 그렇게 비둘기에게 나무라고 싶었다.
그러나 보도블록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헤집던
비둘기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는 것이었다.
나는 인기척을 느껴 놀란 줄 알았다.
달아날 준비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녀석은 고개를 돌린 채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지나는 사람들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 작은 몸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고 무섭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내가 씻지 않았다고, 그러면 너는 얼마나 깨끗한지 말해 보아라.
내 앞에서 얼마나 당당한지 말해 보란 말이다.
내가 자유롭게 날던 저 창공을 누가 오염시켰느냐
내가 씻고 마시던 계곡은 또 누가 그렇게 했느냐 말이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물러서지도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숨을 고른 후에
바닥의 흙먼지를 헤치고 다시 먹이에 부리를 댄 후에야
겨우 한 두 걸음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鳩, 鳩, 鳩
앞으로 길을 걸을 때는 비둘기 발자국도 확인하고 조심 조심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어느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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