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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작가의 병영일기]서울 논산 광주<입대 영장>[첫회]
참고로........ 이 글은 \'아이러브스쿨 휘문 사랑방\'에 \'김원석(58회) 작가\'께서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계속 중...) 작가의 동의 없이 우리 총교우회 게시판에 퍼 올림니다..나중에 제가 깨지더라도....... 왜냐구요?  넘 잼있고 공감이 가니까요....ㅎㅎㅎㅎ...그리고 우리 \'아이러브스쿨 휘문 사랑방\'회원님들만 읽기엔 너무 아까워서요...여러분 이 글 읽으시고..한번쯤 추억의 군 생활 나름대로 반추해 보세요..... 특히 김원석 선배님의 소탈하고 리얼한 얘기는 충분히 공감을 얻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대한민국 여자들이 제일 싫어 하는 이야기가 남자들 군대 가서 축구한 이야기라더군요. 군대 가서 축구는 하지 않았습니다. 격구라는 건 했습니다만........ 아무튼 지금도 생각나는 훈련소 이야기를 써볼 작정입니다.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시작해봅시다. <입대 영장> 1967년 12월 21일이 종강이었던 것 같다. 35년도 넘은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건 머리가 명석해서가 아니라 이 날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들 때문일 것이다. 명보극장 골목에 줄서 있던 어떤 튀김집에서 재수하고도 원하던 대학에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하는 수 없이 진학한 5류 대학의 1학년 생활을 마감하는 쫑파티에서 카바이트로 익힌 막걸리를 왕창 마시고 집에 돌아와 변소부터 달려들어가 휠터링으로 정종이 된 말걸리를 한 되쯤 갈기고 대문간에 있던 내 방에 들어가니 책상 위에 낯선 종이쪽지가 놓여 있었다. <1968년 2월 21일 오전 9시 30사단(화전) 집결>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비슷한 내용이었다. 정확히 두 달의 여유가 주어진 입대 영장이었다. 그 전 해에 <신체검사 통지서>가 본적지 주소로 발부되었으나 수령하지 못해 1967년 5월, 주소지로 재통지된 신체검사를 받지 않으면 기피자가 된다는 또래들의 말에 \'어마 뜨거라!\'고 달려간 신체검사 장소는 숙명여대 건너편에 있는 효창국민학교 강당이었다. 결과는 갑종이어서 입대는 이미 숙명이었고, 친구들이 신체검사를 받으면 그 다음 해에 1년쯤의 여유를 두고 영장이 나온다고 하여 내후년으로 입대를 예상하고 있던 터여서 2달간의 유예 기간이 주어진 영장은 의외였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 2달......이었다. 당시 입시를 앞둔 여고 3학년의 가정교사가 내 아르바이트였었다. 지금은 왕십리 무학여고 옆뎅이 어디선가 유아원을 한다는 주매리(朱梅利)가 내 첫제자였다. 뒷날 김대중의 중매로 경기지사 임창렬과 재혼하여 뇌물수뢰죄로 철창 신세를 진, 당시는 수도의대에 다니는 주혜란(朱惠蘭)의 바로 아래 동생이었다. 주혜란이 직접 동생을 가르치지, 하필이면 5류 대학생인 너였느냐고 묻는다면 주혜란과 함께 의대를 다닌 동기동창생이 있어 알겠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의대에 입학할 실력이 아니었다. 그녀의 부친인 주인호(朱仁鎬) 박사가 수도의대 교수여서 입학 특혜가 주어진 것으로 알면 된다.   졸업후에 국가고시인 의사시험에도 불합격한 그녀였으니 내 주장이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용산보건소 소장을 한 의사 자격은 어떻게 땄느냐고? 당시는 무의촌(無醫村)이 많아 의대 졸업생으로써 3년간 지원하여 봉사하면 의사 자격증을 주는 제도가 있었을 걸? 입대가 결정되었음에도 한 달 동안 술은 철저히 절제되었다. 막걸리 냄새를 풍기면서 입시를 앞둔 입시생의 공부를 방해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날, 마침내 매리는 면접을 보았다. 당시 대학입시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선택과목과 면접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도 왠지 면접을 보았다. 가정교사라는 책임감으로 면접 시험장까지 따라가야 했던 내게 면접을 마치고 나온 매리는 예상해준 질문이 그대로 날아와 대답을 잘했다며 영화구경을 졸라 늦은 점심을 먹으며 단성사에서 상영중이던 죠지 차키리스, 리차드 베이머, 나탈리 우드 주연,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쥬리엣>을 번안한 레오나르드 번스타인 작곡의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를 보기로 했다. 일반 영화가 6-7회 상영인데 비하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3시간을 넘어 4회 상영인데다 방학중이고 인기가 있어 겨우 마지막회를 예매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밤 11시가 다 되어 극장문을 나오니 강추위가 몰아치는 거리에는 백차들이 경적음을 울리며 달리는 등 분위기가 수상했다. 다음 날 아침, 대문간에 떨어진 신문을 보니 어젯밤 무장간첩단과 경찰이 자하문 초소에서 접전을 벌여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총탄에 맞아 전사하고 경찰관 2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도주중인 무장간첩단을 군경이 추적중이라는 것이었다. 안방으로 급히 뛰어들어가 텔레비전을 켰다. 평소에는 아버지가 주무셔 상상할 수도 없는 행위였다. 텔레비전 흑백화면에는 긴급사태로 뉴스가 반복되어 방송되고 있었다. 이른바 <1·21 사태>였다. 평소라고 해도 기분이 싸아-해지는 뉴스인데 입대 영장까지 받은 상태에서 벌어진 상황이고 보니 \'에이 씨, 세상 제대로 돌아가는구나!\'하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다니기 싫은 대학이었고, 영장을 받고부터 집중적으로 전쟁문학을 읽으며 준비한 군생활이 \'월남전에 지원해서 운이 좋아 살아 돌아오면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어윈 쇼의 <젊은 사자들> 같은 소설이나 하나 써보지\' 하는, 조금은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1·21 사태>가 발생한 지 3일 만인 1월 23일 동해안 공해상에서 미 해군 소속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Pueblo)호가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푸에블로호 납북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고 극동 주둔 제5공군에 비상 출격 대기령을 내리는 한편,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원산항 근해로 배치하는 등 강경 조처가 연속으로 발표되고 있었다. 월남은커녕 훈련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전투에 투입되어 \'내 청춘 끝나는구나!\'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하며 기다렸던 전쟁은 발발하지 않아 술집에 앉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2월 21일 입대를 기다릴 수 있었다. <계속> 읽고난 후기를 간략하게나마 \"리플\" 달아 주시면....우리 게시판이 더욱 활성화 됩니다..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