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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중·고교 봅슬레이·스켈레톤팀의 합동 훈련 ]아스팔트라도 좋다… 꿈이 달리지 않는가 !

한국판 '쿨러닝' 준비하는 휘문중·고 봅슬레이팀, 국가대표와 합동훈련
CF에 쓴 급조 썰매지만 출발 연습하기엔 그럴싸…
'학생 훈련 자체가 감격… 원대한 도전에 큰 발자국'

붉게 포장된 아스팔트에서 열기가 치솟았다. 그 위를 달리는 썰매 바닥에 강철 대신 달린 고무바퀴 4개가 금세라도 흐물흐물해질 것 같다. 그런데 거기 올라탄 청소년들은 한여름 대신 눈 덮인 설원(雪原)을 달리는 표정이었다.

20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선 봅슬레이 국가대표팀과 휘문중·고교 봅슬레이·스켈레톤팀의 합동 훈련이 한창이었다. 낡은 4인승 봅슬레이를 보며 강광배(37) 대표팀 감독이 말했다.

동계올림픽 메달을 꿈꾸는 봅슬레이 꿈나무들은 고무 바퀴 달린 썰매로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있었다. 휘문중·고 봅슬레이팀 선수들이 스타트 훈련을 하고 있다. /김지환 객원기자
'저거 2008년에 만든 겁니다. 한 이동통신사가 봅슬레이 대표팀을 모델로 CF 찍겠다고 급조한 거지요. 봅슬레이라고 부르긴 민망하지만 그래도 제 몫은 해요. 방향도 틀 수 있고 브레이크도 잘 듣습니다.'

중 1부터 고 2학년까지 8명으로 구성된 휘문중·고팀은 국내 학교에는 단 하나뿐인 봅슬레이·스켈레톤 팀이다. 한국은 동계올림픽 유치에 힘을 쏟고 있지만 금메달 8개가 걸린 썰매 종목 팀은 이들과 실업팀 1개(강원도청)가 전부다.

아스팔트 질주하는 바퀴 썰매

'오케이?'

코치의 구령이 떨어지자 어린 선수 4명이 '예! 스!'라고 소리친 뒤 '바퀴 썰매'를 밀며 달려나갔다. 평지에서 썰매를 10m쯤 밀다가 한 명씩 차례대로 봅슬레이에 올라타는 훈련이었다.

출발 전 기합을 넣는 선수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바퀴가 달린 썰매지만 학기 내내 학교 운동장에서 기초 체력 훈련만 해온 선수들은 봅슬레이를 탄다는 것 자체가 신나는 것 같았다.

이론 수업 뒤 국가대표 '형님'들의 시범도 봤지만 초보자여서 손발이 맞을 리가 없었다. 박재웅(14)이 썰매에 올라타는 과정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져 아스팔트 바닥에 왼쪽 무릎이 긁히면서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소독을 하고 응급처치를 받은 박군은 '괜찮아요. 안 아파요' 하며 다시 합류했다. 이진희·김동현 같은 국가대표들이 '몸 중심을 앞에 놓고 균형을 잡아라' '다리를 더 끌어올려야 스피드가 난다'며 연방 '비법'을 전수했다.

국가대표 송진호는 ''유망주'나 '꿈나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던 봅슬레이에 드디어 후배들이 생겼다. 단기간에 기량이 좋아지는 것보다 썰매 종목의 매력을 느끼고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무나 못하는 스포츠잖아요'

휘문중·고 썰매팀은 작년 10월 창단했다. 평소 봅슬레이에 관심이 많았던 민인기 이사장이 강광배 감독으로부터 '썰매 종목은 학생 유망주를 길러낼 방법이 전혀 없다'는 얘기를 듣고 팀 창단을 결심했다.

주장 박경민(17·휘문고 2)과 최민서(16·휘문고 1), 김반석(15·휘문중 3) 등 창단 멤버 셋에 올 3월 다섯 명이 합류해 봅슬레이 4명, 스켈레톤 4명 등 8명으로 팀을 꾸렸다.

박재웅(당산서중 3), 김희승(14·신사중 3) 등 2명은 휘문중·고생이 아니지만 '봅슬레이가 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팀에 합류했다. 박재웅군은 매일 지하철로 왕복 100분씩을 이동해 훈련에 참가했다.

왜 이들은 이름조차 생소한 썰매를 시작했을까. 김준수(14·휘문중 2)는 '아무나 하지 못하는 스포츠를 하고 있다는 게 좋다'고 했고, 김희승은 '치열한 경쟁 없이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막내인 박준우(13·휘문중 1)는 '공부를 하면서도 할 수 있는 운동부라고 해서 가입했다'고 말했다. 휘문중·고팀은 학기 중엔 수업이 전부 끝난 오후 4시 30분부터 6시까지 훈련을 했다.

이날도 선수들은 점심식사 후 2시 30분부터 인근 도서관에서 1시간 동안 공부하고 오후 훈련을 시작했다. 강 감독은 '학생들에게 운동하기 전보다 성적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고 했다.

창단 멤버 3명은 올 1월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에도 참가했다. 최민서는 '그때 조종이 서툴러 봅슬레이가 뒤집히기도 했다. 무섭기도 했지만 짜릿한 스피드를 경험해보니 이 종목이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한국판 쿨러닝' 예비 주역들

한국 봅슬레이는 올해 '새 역사'를 여럿 만들었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뤘고, 밴쿠버올림픽에서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상위 20개 팀이 진출하는 결선 4차 레이스까지 치러 19위에 올랐다.

강 감독은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을 제외하곤 봅슬레이팀 성적이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학생들의 훈련을 보는 것 자체가 감격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꿈나무 육성이라는 숙원의 한 고비를 넘긴 느낌'이라고 말했다.

휘문중·고팀은 23일까지 합숙 훈련을 마치고 8월 19일부터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 때 다시 대표팀과 합류한다. 8월부터는 새로 완공된 120m 길이의 스타트 훈련장에서 한층 체계적인 훈련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썰매 꿈나무들은 이날 저녁 숙소에서 영화 '쿨러닝'을 시청했다. 열대 지역인 자메이카에서 봅슬레이 대표팀이 꾸려져 올림픽에 나가기 위한 악전고투를 그린 영화이다. 영화 속 선수들도 바퀴가 달린 썰매를 탔다.


-2010년 7월 20일자 chosun.com [sports 인사이드] 발췌